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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Jan 17. 2022

그거 농담아니고 성희롱입니다

팀장에게도 할 말은 해야 한다


키가 작고 려보인다는 이유로

나는 일하며 짓궂은 농담을 많이 들었다.

시작한 이야기 성(性)적으로 이어지는 게 부지기수.

처음에는 아, 네. 하고 넘겼지만

농담의 강도가 세져 질문까지 해대면 얼굴이 빨개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저걸 똑같이 돌려주면 뭐라고 할까.

 

작가 6개월 차 쯤이였다. 오며가며 보는 피디가 있었는데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꽤 자뻑이 심했다.

"키 170 이하는 여자 같지가 않더라."


글쎄 본인 키도 170 조금 넘어 보이지만..

개인 취향이니 그러시구나. 해줬다.

문제는 질문형으로 바뀌면서부터였다.


"솔직히 여자 몸무게 50 넘으면 돼지 아니야?"

"자긴 키가 작으니까 그보다 적게 나가지? 몇 키로?"

"키 작아도 몸매가 굴곡은 있네, 그럼 뭐 괜찮지."


지금 쓰면서도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싶은 정도지만

17-18년 전에는 인사처럼 하는 말이었다.

화난 내가 얼굴이 퉁퉁 부어있으면

주변에선 귀여워서 그래. 넘어가 줘, 했고

대개는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농담으로, 분위기 처지지 않게.


하루는 그 피디가 찾아와, 묻지도 않은 토크를 꺼냈다.

키 168에 47킬로 쭉쭉빵빵 여자를 만났는데

밀어내는데 그쪽에서 좋다고 엄청 매달린다며.

그 후에 질문이 시작됐다.

"혹시 남자 친구 있나?"


대표님이 대신 말했다.

"얘 있어, 되게 멋있는 남자 친구."


미끼를 물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이 동그래졌다.

"오, 그래? 어떤 스타일이야?"


음. 지금이구나.  어디 당해봐라.

"키 186 에 70 키로 정도?

 전 180 하는 남자로 매력을 못 느껴서요."


이거 오해 없길 바란다.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았다.

"피디님은,  키가 몇이에요?"


얼굴이 벌개진 채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다 나가는 꼴이라니.

대표님은, 너 보통 아니다. 라며 웃었.

나는 으쓱했다.  당신 말에 나는 매번 기분이 나빴는데

당신도 한 번은 기분 나빠봐야  않겠니?싶어서.


작은 사무실에서는 그 정도에 그쳤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는 환경이 되니

성적인 말이 하루 종일,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신기한 건 다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Y피디는 매일 입에서 그런 소릴 흘리고 다녔다.

칭찬처럼 하는 말들이 꽤 노골적이었다.

나는 막내작가였고 농담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가 많았는데

당황하지 않는 날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유리 테이블 아래로 몸을 쓰윽 훑어보는 시선 끝에

"막내 다리가 이쁜데~" 하면 선배 언니는

"나 글래머인데? 쟤 어려서 나 밀린 거니?" 했고

사람들은 다 키득키득 웃었다.

처음엔 사회성이 떨어지는 걸까 고민을 했다.

내가 예민해서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는 걸까.

"아~ 예. 제가 다리는 좀 괜찮습니다~" 하고 넘어가야 하나.

그런데 누구 하나 그렇게 만들고 웃는 분위기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아닌 누구여도 나는 유쾌하지 않았다.


피디의 농담은 집요하게 나를 향했다.

내가 제일 어려서 였겠지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끈적한 시선 뒤에는

신체 부위에 대한 칭찬이나 질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문제의 그 날이 왔다.

"가슴 좀 있어 보이는데 무슨 컵이야?" 

 

나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 성희롱 신고하면 벌금 3500만 원이라던데요."

   3500 있으시면 계속 그런 소리 하세요.


피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얘는 무슨 예능을 다큐로 받아.

농담이잖아, 농담. 하며 어르는 언니들이 나는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회의 중에 가슴 사이즈 묻는 예능이고 농담으로 받지 않는 내가 다큐고?


그날 나는 언니들에게 크게 혼났다.

적당히 넘어가지 른 민망하게 그런 소릴 하냐고.

나는 끝까지 죄송합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그건 농담이 아닌 성희롱이었고

언니들은 후배인 나를 혼낼 것이 아니라

피디에게 일침을 날렸어야 옳았으니까.


부당함에서 목소리 내지 않으면 당연히 해도 되는 사람이 된다.

의사는 예의를 지켜서 분명히 전달하긴 바란다.


물론 나는 그 때도, 지금도

당연하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으며

내 후배에게도 절대로 듣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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