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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Jan 20. 2022

작가에게 글 잘 쓴다는 칭찬이란

같이 일하는 피디에게 받는 최고의 찬사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원래 목적은

힘들때 마다 부적처럼 마음에 담고 있던 말들을

잊지 않도록 적어두고 싶어서였다.

때로 지나가는 듯, 때로는 의미심장했던

주저 앉은 내가 짚고 일어날 수 있었던 그 말들을

잘 적어두었다가 지칠 때마다 꺼내보고 싶었다고 할까.

그건, 주기적으로 번아웃이 오는 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처방이기도 하다.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가 고민 끝에 다시 작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여러가지로 힘들었다.

묘한 신경전과 눈치싸움, 시기와 질투, 이간질을

어떻게 접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해야하는 것과 하지말아야 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

사회생활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기란 쉽지않았다.

사수 피디님은 잘 지내냐며, 힘들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손놓고 떠나기에는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나는 나날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 때 내게 주어진 일 중에 하나는 자막이었다.

잠깐 여기서 이야기 하자면, 방송마다 자막을 쓰는 사람이 다르다.

어떤 곳은 피디들이 쓰고, 어떤 곳은 작가가 쓰고.

피디가 쓰고 작가가 감수를 하는 곳도 있다.

자막을 써 본 작가 입장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녹화를 같이 했어도 가편본을 덥석 받으면

이 컷은 무슨 자막을 쓰라고 넣었지?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러다보면 간혹 편집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거나

의미 없는 자막을 쓰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자막에 있어서 특별했던 피디가 있었기 때문이다.


L피디는 장난기가 많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랑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보통 피디들은 편집이 끝나면 편집본을 바로 보내고 퇴근하는데

L피디는 늘 작가가 편집실로 오길 바랬다.


나는 그래서, 자막쓰는 날이면 밤 10시쯤 회사에 가서 의자를 붙여놓고 누워

새벽까지 자다 깨다하면서 완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전화가 오면 노트북을 들고 비몽사몽 잠을 깨며 편집실로 갔다.

종일 돌아가는 편집기의 열기를 식히려 에어콘이 강력하게 돌아가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담요를 두른 채 덜덜 떨어야 하는

시베리아 같은 편집실로 가면. 며칠 밤을 샜는지 좀비 상태가 된 피디가 맞아주었다.


"작가님, 옆에 앉아봐요."


독특한 지점은 여기였다.

그는 자신의 편집본을 처음부터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면서

자신이 왜 이런 느낌으로 편집했는지를 한 컷 한 컷 꼼꼼하게 설명했다.


"나는 이런 느낌과 흐름으로 붙인거니까.

 자막을 그런 분위기나게 살려서 써 주세요.

 나는 그림을 알고, 글은 작가님이 나보다 잘 쓰니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피디는 처음이었다.

작가에게,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하는 피디는.

한참 어린 막내작가지만 직업의 특성을 존중해 주고

함께 좋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접근하는

어른스러움을 겸비한 피디는 이후로도 흔치 않았다.


당시 자막으로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내가 잘 써서라기 보다는

장면마다 어울리는 자막을 쓸 수 있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허투루 흘리거나 놓치지 않고

흐름에 맞는 어휘나 문장을 충분히 고를 수 있도록

의도를 설명하는 연출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이상적인 그 말은 나에게 좋은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내가 경력이 높은 피디에게 글로 인정 받는다는 것은

이 직업에 부적합하다는 말은 아니구나 싶어서.


이후 후배에게든, 피디에게든 일로 칭찬할 일이 있다면,

나는 그 때 배운 마음으로 아낌없는 칭찬을 한다.

그리고 어디 계신지 모르는 L피디님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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