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재 Jan 24. 2022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빠르고 확실하게 설득하는 법


시작부터 나의 작가 여정은 생존이었고

가장 자주 한 프로그램은 서바이벌이었다.

첫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모델 서바이벌부터

뷰티 , 레이싱 , 요리 , 음악 , 게임 까지.

대결하고 살아남는 모습을 수시로 방송으로 만들어 왔다.


서바이벌은 다수의 출연자가 우승 자리를 놓고 도전해

회차를 거듭할수록 탈락자가 생기는 구조로 진행되는데

그런 프로그램의 작가가 되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의 자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것이다.

전체를 놓고 공정해야 하는 입장과 내가 맡은 사람을 끌어올리고 싶은 입장.


갈등은 출연자를 맡았을 때 생겨난다.

출연자는 생존에 운명을 걸고

나 같은 경우는 맡은 부분의 퀄리티에 특히 자존심을 걸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들과 달라야지!!

당연히 다음 단계 올라가야지!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나면 대개 전쟁에서 함께 살아남은 전우가 된다.

지긋지긋한 애증을 거쳐 애틋함이 남는.

그렇게 내게도 각별한 전우로 남은 사람이 있다.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했을 때 나는

팀에서 중간급 작가로 총 12팀 중 세 팀을 맡았다.

그중 하나는 여배우 J와 셀럽 P커플이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촬영하려고 연락했는데

당시 P의 매니저가 굉장히 불친절했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받아서는

촬영에 30분 이상 협조해 줄 수 없다는 거다.

방송경험이 적어서  모를 수 있으니 친절하게 말했다.

세팅 시간까지 하면 두 시간은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그러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이 분 스케줄이 한 시간에 얼마인지 아세요?

 그 돈 못 내요, 30분 안에 알아서 찍으라고요."


얼굴이 빨개져서 전화를 끊은 나를 보며

옆에서 들은 작가들은 걱정하고

선배는 말이 안 통하면 시간 안에 대충 찍으라고 달래고

부장님은 대신 말해주냐고 찾아오셨지만

어느 것도 내 방법은 아니었다.

나는 선배 언니와 부장님에게 해결해보겠다고 하고

다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인 번호 주세요. 직접 통화  볼게요."


한 편이 되어 같이 가려면 담판 짓는 게 내 스타일이니까.

둘 중 하나는 결정 나야 한다. 부러지거나, 부러뜨리거나.


그날 밤, 통화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다 맞춰 촬영을 했는데

말한 것과 다르게 나오거나 방송이 통편집된 데서 생긴 불신이었다.

이해는 하지만 그때는 그 때고, 나는 나지.


선생님이 전문가니까 전 믿을게요.

방송은 선생님보다 제가 오래 했으니

제 방법 눈 딱 감고 두 번만 믿어 주세요.

결과 맘에 안 드시면 제가 접을게요.


우리는 매주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출연자의 편집된 영상을 보고 대결을 했다.

그 사이 받는 전화투표가 승패의 절반.

전문가의 점수가 승패의 절반.

절반씩 책임지고 서로 믿자는 게 내 제안이었다.

그는 쿨했다. 두 번 내가 요청하는 대로 촬영하고

퀄리티를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보여주면 되는 거였다.


첫 방송날이 왔다.

첫 만남을 찍은 영상에 이어 대결을 했고 결과는 우승.

다음 주, 탈락자가 발생하는 경연에서도

시청자 투표와 심사위원점수를 합쳐 통합 1위를 했다.

생방송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마주쳤다.

어떠세요? 오늘 마음에 드셨습니까,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뭘 하래도 믿을게요. 이제.

 작가님하고 싶은 거 다 해요."


우리는 그렇게 한 편이 되었고

나는 그날 이후 설득에 늘 같은 룰을 적용한다.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부딪히는 것.

믿을 수 있게 눈으로 직접 보여 주는 것.


꼼수는 결국 들킨다.

신뢰를 맺기에 확실한 건 직진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4시에 외국인 섭외해 보신 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