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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l 11. 2022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글쓰기의 시작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라고 본격적으로 생각했던 건 백수가 되고 나서였다.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은 것은 왜일까? 아마도 새로운 마음을 먹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게으른 몸을 일으켜 아침 운동을 하러 나서는 길, 가을이 성큼 앞으로 다가온 듯 길에는 낙엽에 부스스 떨어져 있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며 오늘 하루를 시원하게 시작할 수 있게 해 줬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오늘의 하루를 꼭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글쓰기에 시작이었다.


그 후로 꾸준히 써왔다. 2017년 11월부터 2022년 현재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글을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다. 나는 어떻게 이렇게 글을 꾸준히 쓰게 된 걸까? 사실 꾸준히 썼다고 하지만 매일 같이 쓰진 않았다. 중간중간 쓰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 책까지 낸 걸 보면 아마도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아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책이라는 매개물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긴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빠져들었던 건 책 속의 글들이었다. 읽는 행위를 넘어 쓰는 행위까지 넘어오는 것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쓰는 사람 중 읽기를 싫어하는 이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난 읽기가 좋아 쓰기도 좋아진 아주 평범한 그런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조금 진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나에게 읽는 행위가 즐겁다는 것을 일깨워줬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나에겐 꽤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생애 처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를 회상한다. 원래 그는 소설가가 아니었다. 술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그런 그가 글을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된 곳은 다름 아닌 야구장에서였다. 어느 날 그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 타석에 들어선 선수의 방망이가 공을 맞추는 순간 그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느낌을 그는 직관적인 진실 파악이라고 하는데, 일종에 계시 같은 거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이 말에 공감했다. 크게 어떤 사건이 있거나 계기가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쓰고 싶으니까 혹은 쓸 수 있으니까 썼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었을 땐 '너무 꾸며낸 이야기다.' 혹은 '허세가 가득하다.' 등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왜냐면 그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이니까.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가 거짓을 책에 쓰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진실성이 담겨 있지 않을까?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무슨 글이든 좋다고 생각한다. 일기도 좋고 그냥 낙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글의 형태가 무엇이든 쓰는 행위는 그것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쓰면 족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자유로워 오히려 더 뭘 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럴 때면 하나의 테마를 잡아도 좋다.


여행, 직업, 일상 등 삶에서 겪는 어떤 경험이나 단상 혹은 영화 리뷰, 책 리뷰 등 그 밖에도 무수히 많다.


내가 처음 쓴 글은 일상이었다. 그날의 하루를 보낸 감상과 있었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썼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글을 써봤다. 책 리뷰도 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글, 100일 동안 멈추지 않고 매일 글쓰기 등 다양한 형태로 써보았다.


여행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쓴 글로 처음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썼던 글이었다. 물론 책으로 나오진 못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조금 더 글쓰기에 진심으로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쓰기 시작했으며, 그 주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책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게 되었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라는 물음에 가장 좋은 대답이 있다. 바로 정여울 작가님이 하신 말인데 인용을 하자면 이렇다.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와의 대면이 아픈 일만은 아니다. 마침내 나의 그림자와 만난다는 것, 그것은 평생 달의 앞면만 보던 삶을 뛰어넘어 달의 뒷면까지 탐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전체성과 만나 마침내 더 빛나는 자기실현의 길에 이르는 것이 대면의 궁극적 지향이다. 심리학적 대면은 자신의 좋은 점만 부각하는 지나친 긍정심리학의 유아성과 결별하는 것이다. 대면은 상처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차별 없이 끌어안아, 마침내 더 크고 깊은 나로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다.”


물론 모든 글쓰기가 트라우마 또는 콤플렉스로부터 출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다뤄볼 수 있는 주제이고, 그 주제를 다룸으로 나는 또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은행 경비원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 이면지에 쓴 글을 퇴근 후 다시 수정하여 한 편의 글로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첫 독립출판물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


나에게 있어 은행 경비원 생활은 그야말로 30여 년 삶 속에서 가장 암흑기에 가까웠던 시간들이었다. 물론 모든 시간이 다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불안'이라는 것이 늘 내 삶에 잠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툭하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굉장히 상투적인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수 차례 발견하면서 나는 점점 더 작아졌고,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직업적인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때쯤부터 난 은행 경비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혹은 나에게도 가장 보여주기 싫었던 모습, 그리고 가장 어둡고 약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했다. 그래야 나 스스로가 나를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정이라는 게 이토록 어렵고 어려운 것이다.


딱 8개월 간 글을 썼고, 2개월간 책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첫 독립출판물인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책을 만들며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혹시 다음에 또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천천히 풀어보고 싶다.


아마도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일종에 동아줄이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 삶이 너무 비루하게 느껴질까 봐 혹은 정말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게 될까 봐 무서워서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미래를 쉽게 예상할 수 없고, 현실은 깜깜한 어둠 속이지만 글쓰기를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적어도 안심할 수 있었다. 일종에 작은 방패막이었고, 불안 속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돌파구였다.


그래서 난 여전히 글쓰기를 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할 것 같다.




위 글은 독립출판 북페어를 늘 함께하는 별ㅊㅊ, 백진주, 이택민 작가님들과 함께 진행하는 메일링 서비스에 공개된 글입니다.



매달 신청을 받고 있어서 8월 모집은 14일부터 진행 될 예정이에요!! 그때 다시 공지할테니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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