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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10. 2022

면접 때 입을 정장을 그의 장례식장에서 입게 됐다

이따금씩 생각이 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삶이 힘들 때나 아니면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불현듯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지금 현재 이곳에 살고 있지 않다. 어디를 갔을까? 나는 모른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꽤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작은 두 눈은 웃으면 반달이 된다. 장난기 많은 그는 항상 나에게 장난치곤 한다. 나보다 형이었던 그는 나와 동료들에게 친구처럼 대해주는 그런 편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에는 나와 친했던 사람이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그 후로 약 5년 후였다.





2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막 정착하던 참이었다. 회사 면접 때 입을 정장 한 벌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이었다. 두 귀엔 무선 이어폰을 끼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저런 가십이나 뉴스들을 훑터보다 하나의 기사에 시선이 갔다. 그 순간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희재 잘 지내나? 혹시 뉴스 봤나?"


그 뉴스는 내가 2년간 군 복무했던 부대 헬기가 추락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그가 그 헬기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에는 조종사 포함 조작사 3인 정원이 실종 및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나에게 연락은 준 이는 나의 맞선임이었다. 그 또한 기사를 접하고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무려 5년 만에 말이다. 잊고 살았다. 사실 그 또한 제대하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살면서 잊고 지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그가 기억이 났다. 또렷한 목소리 그리고 밝은 미소가 말이다.




맞선임인 정우의 연락을 받고 더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곤 그가 제대하기 전 선물로 준 군화를 꺼내어 봤다. 그리고 그 당시 그가 했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들이 회상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타까웠던 소식은 바로 그의 결혼식이 두 달밖에 남지 않다는 것이다. 신랑이 되지 못한 그와 신부가 되지 못한 그의 여자 친구...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던 그녀의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아들을 형을 동생을 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함께한 전우들은 또 얼마나 큰 상실감을 가질까?


군생활을 하던 중 우리 부대 헬기 추락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목포 파견대에서 1대가 추락하였고, 이때도 조종사 2인, 조작사 1인, 무장사 1인 각 4인이 모두 실종 또는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중 조종사 둘은 나와 잠시나마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그중 정조종사 대위는 2살 난 딸이 있었고, 중위 준조종사는 이제 고작 26살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무장사 조작사 분들도 가족이 있으며 친구가 있는 우리 동료였다.


헬기가 추락하고 1주년이 되던 해 나는 부대원들과 함께 현충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천안함으로 순직한 46 용사 근처에 안장된 우리 부대원들도 뵐 수 있었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5년이 지난 후 또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민간인으로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저 그가 가는 길에 한 송이 꽃을 놓아줄 수 있는 일과 이렇게 그를 기억해 주고 글쟁이답게 글로 남겨 주는 일 이외에는 없다.


정우와 연락을 했고, 시간과 장소를 정해 만나 성남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장례식장을 함께 찾아갔다. 면접 때 입으려고 산 정장을 그의 장례식에 먼저 입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같은 부대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민수형, 영주형 그리고 송 상사님 등 병사로 찾아온 사람은 나와 정우 그리고 내가 제대하고 나서 한 참 뒤에 입대한 후임들 2~3명뿐이었다.


민수형은 내가 이병 때부터 병장이 될 때까지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동거 동락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이다. 인간적으로 참 좋아했다. 이병일 때 매일 구박받고 쭈구리 같은 나에게 장난치고 생일도 챙겨주던 그가 지금도 가끔 그립니다. 그런 그가 나와 정우에게 말했다.


"희재야 정우야 우리 이제 다시 이렇게 보지 말자. 안 봐도 좋으니까 제발 잘 살자 우리"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저런 의도로 말했던 것 같다. 영주형은 슬며시 웃으며 "희재 오랜만이네"했다. 영주형은 내가 상병 그리고 병장 때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영주형과 민수형은 동기이고, 그보다는 선임이었다.


참고로 난 작전병으로 늘 사무실에서 기상 상황, 비행 계획 등 다양한 사무적인 일을 했다.




그가 떠나고 5년이 흘렀다. 나는 가끔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한다. 하늘 위 헬기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착하디 착하고, 선하디 선하고 친절한 그가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을까? 나에게 있어 그는 비록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가 떠남으로 인해 나에겐 이제 더 이상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이 아닌 내 안에 머물게 되었다.


가끔 힘들 때 생각한다. 성철이 형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지. 헛되지 않게 살아야지 하고 되뇐다.


모든 국군 장병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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