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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n 01. 2020

8년간 준비한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습니다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요즘 유튜브를 자주 본다.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것들도 많아 시간 때우기 아주 좋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 있다. 8년간 준비한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그 영상을 보기 전에는 ‘와... 8년?? 진짜 대박이다. 근데 포기한다고?? 진짜 힘들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8년이라니 그 시간 동안 어떻게 견뎠을까 감히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그 영상의 조회수가 엄청났다. 거의 100만 뷰를 눈앞에 누고 있다. 보통은 합격했다는 영상이 인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격을 하고 싶어 하지 탈락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합격을 한 영상을 보며 자신도 합격을 하기 위한 전략을 짜거나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포기했다는 영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클릭을 하게 만든 것일까?


매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하지만 합격의 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열에 한 명도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2019년 기준 9급 행정직 공무원 지원자 수는 2만 5천 명 정도인데 비해 합격자 수는 250명 정도였다. 97%가 불합격인 것이다. 그 열에 한 명이 되지 못한 나머지 아홉은 다시 다음 시험을 준비한다. 그러나 다음 시험이라고 합격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며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남들보다 많이 남들보다 정확히 정답을 찾아내는 연습을 할 뿐이다. 현실은 이렇다. 모두가 합격을 원하지만 모두가 가질 수 없기에 합격을 한 사람보다 실패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8년간 준비한 것을 포기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안다. 사실은 나도 그랬고 너도 그랬을 테니까.



영상의 댓글의 반응은 다양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힘내라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련하게 8년씩이나 했냐는 둥, 그 정도면 거의 공부 안 한 게 아니냐는 말 등 부정적인 말들도 많았다. 우리는 포기하는 것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맛집을 가기 위해 2시간을 기다리다 지쳐 다른 곳으로 갈까 하다가도 기다린 2시간이 아까워 참고 더 기다린다. 그런데 자그마치 8년이다. 그동안 공부한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래도 되기만 하면 정년까지 걱정 없이 일 할 수 있으니 희망을 가지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영상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8년 동안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아 끝까지 매달려 봤습니다.
그런데 8년이 지나고 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조금만 더는 없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젊은 청년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건강과 정신을 모두 소모하면서까지 그 일이 그렇게 매력적이고 가치가 있는 일일까? 과연 정말 내가 공무원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걸까.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준비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기업은 더 이상 개인을 책임져 주지 않는 사회 풍토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거라는 달콤함에 취해 있다.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이 나오고 고용이 안정적인 공무원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약점들을 모두 커버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에 너도 나도 일단 해보는 것이다. 그 바늘구멍이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내가 열 명중 아홉이 되지 않고 한 명이 되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열심히만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불나방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너도 나도 뛰어드는 것 같다.


예전에 나는 공무원 같은 일은 시켜줘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왜냐면 너무 지겨울 것 같았다. 재미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되지도 않을 시험에 목을 매며 몇 년씩이나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련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나도 경찰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인터넷을 뒤져봤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턱 없이 낮은 합격률과 말도 안 되는 공부량, 무엇보다 경쟁률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니 딱 떠올랐다. 불안이었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할 수는 없었고 그나마 공무원은 되기만 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고, 너도 나도 도전하기 때문에 왠지 나도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뭘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우리는 가장 쉽게 찾는 방법이 다른 사람은 뭘 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나도 여행이 가고 싶고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을 신으면 나도 하나 갖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영상 속 주인공은 시험을 포기한 후에 그동안 방치해 뒀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다. 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유튜브도 시작했다. 포기했지만 다시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버려 뒀던 몸과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 듯 보였다. 우울증이 생겼고, 대인기피증이 생겨 사람 만나는 것도 피했던 그녀였기에 포기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포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포기하는 사람을 두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연약하다는 말을 한다. 내 엄마만 해도 그렇다. 엄마 눈에는 내가 뭐든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해 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해 놓은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쓸 수 없었을 글이다. 멋있는 글을 쓰고자 했던 나 자신을 내려놓은 것,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포기한 것, 창업을 포기한 것 등 나는 지금까지 많은 포기와 좌절했다. 더 이상 나를 포장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영상에서 그녀 또한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유튜브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양 손의 크기는 한계가 있어 모든 것을 다 잡을 수 없다. 욕심을 부리면 쥐고 있던 것도 놓칠 수 있다. 그렇기에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포기해야만 한다. 그랬을 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 영상 속 그녀는 점점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어 보였다. 유튜브를 하며 자신이 영상을 만지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것을 꾸준히 하고 싶은 희망도 생겼다. 운동을 꾸준히 해 마라톤에 도전을 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고 있어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하다고 두렵다고 금방 금방 그것들을 피해 타인의 그림자 뒤에 숨어 버린다면 우리는 어쩌면 평생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른 채 죽어 갈지도 모른다. 나 또한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책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진정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내길 바라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원한다면 기꺼이 나는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다. 모두들 파이팅!!


* 본 스토리의 배경은 김붕어 유튜버님의 '8년간의 이야기' 영상을 보고 느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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