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사람은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는 잃는다. 꼭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대부분 그렇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혹독한 자기관리를 해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못 먹지만 그 대신 건강한 몸을 얻을 수 있다. 일을 하면 일하는 만큼 자유를 구속당하고 시간을 소모하지만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면 물건을 얻는 대신에 돈을 지불한다. 마이너스가 있으면 플러스도 있다. 시간과 공간은 무한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은 유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이유는 남들과 똑같이 살기 싫었고, 20대가 끝나기 전에 배낭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은 취업을 준비하고 직장에 들어 갈 때 난 호주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여행을 떠났다. 직장 대신 여행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남들 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했고,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직장을 얻는대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식으로 활용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럴까 유일하게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여행경험이 전부였다.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배낭여행 남들은 한 가지도 하기 힘들어 하는 것을 난 다 해봤으니 사실 이 쪽으로는 그다지 미련이 없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안정’이다. 지금 현재로서 가장 불안한 건 아무래도 ‘직장’이다. 어디에도 소속 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에다 아직 글로는 껌 하나 조차 사먹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통장 잔고는 비어질 준비가 되어있다.
반대로 20대 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 혹은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나름 ‘안정’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면 부러워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를 보고 20대 때 그렇게 여행 다니는 건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그러지 못해서 부럽다고 한다. 그러면 난 뭐라고 말할까. 사실은 나도 당신이 부럽다. 내가 가지지 못한 ‘안정’을 가진 게 부럽다.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게 부럽고 자기 이름이 박혀 있는 명함이 있는 게 부럽고 어딘가 소속되어 있는 게 부럽다. 자신을 소개 할 때 직업에 대해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게 부럽고 다음 달 카드 값과 월세를 맞추기가 빠듯하여 카드대출을 조금 받아 볼까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게 부럽다. 대출이 잘 나오는 것도 부럽고 투 잡을 뛰지 않아 주말에 한가로이 쉴 수 있는 게 부럽다. 어째든 추억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아무래도 먹고사니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대서사니까.
내가 20대 때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럽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이 살지 않고 자유롭게 살 거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지 못한다. 사실 그 사람은 부럽다고 말은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부럽진 않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쉽게 선택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늘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면 말이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 은행원들도 과거 나의 이력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들 한 결 같은 반응들이었다. “부럽다. 나는 왜 학생 때 그런 여행 한 번 못 가봤을까. 희재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사실은 못간 게 아니라 안간 게 아닐까. 애초에 그냥 갈 생각이 없었던 거지. 부럽긴 하지만 그게 취직을 미루면서 까지 퇴사를 하면서까지 할 만큼 부러운 건 아닌 것이다. 그냥 어쩌면 인사치레 예의 상 하는 말 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막상 가라고 하면 또 못 갈 것이다. 진짜 가고 싶으면 어떻게든 가게 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은행원이 부럽다고 생각하지만 은행원이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니까.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더 좋고 더 현실가능성이 높으니까. 나도 그냥 인사치레 예의상 그렇게 생각했던 거다.
사람은 자신에게는 혹독하면서 타인에겐 관대해 보인다. 내가 볼 땐 나에겐 단점 밖에 없어 보이는 것 같고, 타인은 장점만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가진 ‘불안’과 ‘인정받지 못함’은 보지 못하고 내가 가진 ‘경험’과 ‘자유’만 보게 된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남에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남이 입었을 땐 예뻤던 옷이 막상 내가 입으면 그런 태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남에 것에 집착하지 말자. 누구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니 어찌 보면 우리가 가진 떡은 다 똑같은 크기일 수도 있다. 그냥 내가 가진 떡을 세상 가장 맛있게 먹는 척 연기 하는 게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정 남에 떡이 커보여서 가지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가져보자 사실 가져 보지 않으면 큰지 작은지 모르니 고민만 하지 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내 것으로 만들어 보자. 그렇게 실패도 해 보고 소소하게 경험을 하다 보다보면 어느새 내 입맛에 딱 맞는 떡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저 어떻게 살아도 남들처럼 살기 보단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가장 잘 사는 방법이지 않을까? 그러니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떡과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한 번 만들어보자. 후회 없는 삶을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