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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May 28. 2020

은행 경비원으로 돈 벌고
글쓰기로 자아실현 합니다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은 공감을 했던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작가가 청소 일을 하면서 느꼈던 일들을 그림과 글로 잘 표현했던 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는 본래 미술에 관심 있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 후 취직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계속 되는 취업난으로 인해 백수 생활이 점점 길어지고 있던 때 엄마의 제안으로 청소 일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청소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유동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무엇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엄마라서 더 좋았다고 했다. 여러모로 그녀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조건이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녀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 그에 따른 선입견이었다. 


아침부터 흙먼지 뒤집어쓰고 청소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흘끗 쳐다보고 가는가 하면 자신이 청소 일하는 것을 당당하기 말하기보다 왜 청소 일을 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모습에 당황해 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어 책을 읽는데 격한 공감을 했다. 특히 다른 것 보다 나의 직업을 말 할 때 나도 모르게 구구절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다. 보통은 디자이너면 디자이너라 하고 건축회사 다니면 그렇다고 말하면 그만인 것을 그냥 은행경비원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되는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 하고 있었을까. 아무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람들이 보기엔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에서 였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설명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자주 반복 되면 말하기도 귀찮아 지고 대충 돌려서 말할 때도 많았다. 오늘 보고 안볼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은행에서 일한다고 해버린다. 뭐 어째든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은행원이냐 라고 물어보면 그때선 은행원이 아니고 은행경비원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면 뭔가 모를 패배감이 슬며시 밀려온다. 뭐지 이 느낌은 왠지 은행원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이 기분은. 어쩌면 나 스스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납득을 하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내 직업을 말 할 때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이 패배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이것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직업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 때문이지 않을까? 직업에 귀천이 있는 이 나라에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나’ 라는 사람이 새롭게 정의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직업이 곧 내가 되기도 한다. 흔히 꿈이 뭐냐고 물으면 보통 직업을 말한다. ‘선생님이 되는 게 제 꿈입니다.’ 혹은 ‘경찰관이 되는 게 제 꿈입니다.’와 같이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청소부가 제 꿈입니다.’ 혹은 ‘은행 경비원이 제 꿈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난 듣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돈을 적게 벌어서 또는 전문성이 없어서 비전이 없어서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들이 종합 되어 비춰지는 사람들의 시선들이다. 하찮게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시선들이 있기에 내가 선 듯 내 직업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이다. 직업이 곧 나라면 난 하찮은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 직업만큼 하찮지 않다고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구구절절 설명한다. 난 원래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지금 사정상 잠깐 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처음 은행경비원을 시작했을 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잠시 동안 하는 임시직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았고, 찾는다 한들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 벌써 삼 년째가 되어간다. 이렇게 되다 보니 어느 순간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럴 때면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 둘 순 없었다. 월세와 카드 값은 매달 내야 하니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해야만 했다. 임시로 시작한 일을 평생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우울해 졌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러려고 서울에 올라온 게 아닌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 갈 순 없었다. 이대로 패배자인 채로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 무기력한 날을 보내던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쓰기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냥 취미로 일기 쓰듯이 했다. 워낙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글쓰기 또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2-3년 동안 글을 쓰다가 보니 어느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은 독립출판도 할 수 있으니 나도 내 이름으로 새겨진 책을 한 권 내 보자고 마음먹었다. 작가가 된다면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퇴근하고 나면 카페에 가서 2-3시간 씩 글을 쓰고 주말이면 편의점 알바를 하며 글을 썼다.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이제는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림 책이라 1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다시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보면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의 직업을 소개 할 때 망설이던 그녀는 이제 “청소일로 돈 벌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자아실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이제부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은행경비원으로 돈을 벌고 글쓰기로 자아실현 합니다.“ 어떤가. 그래도 좀 있어 보이지 않나? 그러다 진짜 내 글이 책으로 나오면 난 두 가지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니 세 가지인가? 작가, 은행경비원 그리고 편의점 알바생. 와 쓰리 잡이면 그래도 돈은 많이 벌겠다. 나쁘지 않은데? 그럼 또 열심히 글을 써야 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꼭 내 글이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돈도 많이 벌고 작가라고 떵떵거리며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고 싶다. 


마지막으로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작가는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그래서 지금은 청소일 그만뒀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녀의 답은 아직 청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책이 잘 팔려도 꾸준하지도 않고 불안정하고 생각보다 책을 팔아서 밥 벌어 먹고 살긴 쉽지 않나보다. 나도 책을 쓴 작가가 되어도 은행경비 일은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다 일단 끝까지 써보자. 또 모르지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그분처럼 나도 대박이 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니까. 불안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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