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호주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부터 일을 나갔지만
오전 6시부터 오전 9시 하루 3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기에 한 가지 일을 더 해야만 했다.
새벽 청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명 주 7일동안 해야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일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나 돈 때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일 자리를 하나 더 소개 해 주었다.
그 친구 덕분에 호주에 정착하는 일이 꽤 수월했다.
그 녀석과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한게 그 녀석과 처음 만난 곳은 다름 아닌 군대였다.
해군 동기였지만 부대가 달라 친하진 못했다. 물론 상병쯤 그 녀석이 우리 부대로 전입을 왔지만
당시 난 파견부대로 전출을 갔기에 실상 같이 보낸 시간은 병장 5개월 정도 뿐이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몇 년이 흘러 호주에서 그 녀석을 보리라곤 솔직히 생각지 못했다.
물론 내가 먼저 연락을 했고, 브리즈번으로 갔기 때문도 있지만 지금까지 친하게 지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역시 인간관계란, 누군가 한 쪽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고 서로가 통하지 않으면 이어지기 힘들다.
아무튼, 친구가 나에게 알려준 일자리는 식당 키친핸드 즉,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일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웃백에서 한 달간 해 본 경험과 군대에서 식판을 닦아 본 경력이 있는
나름 경력직이었기에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는 가게 이름과 위치를 알려줬고, 그곳 해드쉐프의 전화번호도 알려줬다.
내가 일했던 가게의 이름은 토로 브라보, TORO BRAVO 기억이 가물해서 맞는지 모르겠다.
일하는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였다. 하루 4시간이었다.
매일하는 일이 아닌 일주일에 총 3일 화, 금, 토였다.
그마저도 화요일은 손님이 적으면 출근하지 않는 날도 꽤 많았다.
첫 출근날 조금 일찍 집을 나서 가게까지 걸어갔다.
걸으니 생각보다 꽤 멀어 다음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주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 솔직히 조금 긴장됐다.
새벽청소는 거의 다 한국인들이라 딱히 호주 애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식당은 주방 직원부터 홀 직원까지 모두 호주 사람이라 조금 떨렸던 게 사실이다.
가게 주변에 도착해서 이리 저리 둘러봤다. 시간이 남아 조금 서성이다 10분 일찍 들어갔다.
들어가니 덩치가 엄청나게 큰 백인 헤드쉐프 크리스가 날 반겼다.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크리스가 그랬다.
"오, 너 영어 좀한다?"
그때는 몰랐다. 그 녀석과 영어로 싸울 거라곤 말이다.
첫 날부터 손님은 미친듯이 들이닥쳤다.
그곳은 식당이긴 하지만 홀에는 DJ도 있고 BAR도 있는 클럽겸 술집이었다.
그렇기에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은 아주 그냥 파티가 벌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기름진 음식이 가득했던 접시를 닦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했다.
손잡이를 누르면 강력하게 분사되는 호수를 오른손에 잡고 왼손에는 접시를 잡아 1차적으로 행군다.
행궈진 접시 및 식기구들은 트레일에 올리고 가득한 트레일은 식기세척기로 2차 행굼을 당한다.
그럼에도 닦이지 않는 이물질들은 3차로 행궈내면 끝.
안 그래도 뜨거운 날씨에 통풍이라곤 1도 안 되는 구석진 곳에서 뜨거운 물과 수증기를 맞으며
몇 시간 동안 쉼없이 일하고 있자니 더워서 사망하기 직전이었다.
뜨거운 수증기를 맞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피부는 좋아지겠네... ㅅㅂ"
시간이 지날수록 목은 타들어 갈 것 같이 메말라갔다.
그때, 주방으로 들어 온 키가 훤칠하고 수염이 가득한 백인 남자가 인사를 건냈다.
"안녕, 너 새로운 애구나. 난 히스라고 해. 이름이 뭐야?"
"아.. 안녕, 난 희재라고 해."
다른 애들과는 달리 굉장히 쾌활하고 인상 좋으며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말을 건 홀 직원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뭐, 마실래? 물, 콜라, 쥬스 있어"
알고 보니 그는 BAR에서 근무하는 바텐더였다.
그래서 난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콜라라고 외쳤다.
사실 그냥 물 먹고 싶으면 달라고 하면 되는데 그날은 첫 날이었고,
뭔가 워낙 바쁘다 보니 말을 꺼내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히스는 나에게 쇠로 된 큰 컵에 콜라와 얼음을 가득 담아 주었다.
센스가 넘쳤던 것은 빨대를 무려 3개나 꽂아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목이 말랐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가 준 콜라컵을 들고 3개의 빨대를 쭉~하고 빨아들였다.
청량한 콜라의 탄산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의 그 짜릿함.
3개의 빨대에서 무차별적으로 밀고 들어 오는 콜라의 시원함.
달콤하면서도 탁탁 터지는 탄산의 그 청량함.
아마도 군대 훈련소에서 처음 먹었던 그 콜라의 맛보다 더 달콤하고 시원했던 것 같다.
그 콜라 덕분에 나는 마치 잃었던 원기를 회복했다는 듯이 힘이 솟아났다.
그 후로도 출근하면 히스는 나에게 항상 물었다.
"뭐 마실래? 오늘도 콜라?"
그와는 꽤나 친하게 지냈다. 아쉽게도 그곳에서 난 3개월 남짓 밖에 일하지 못해서
오래 보진 못했지만 페이스북으로 간간히 소식을 전했었다.
(히스는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하던 여사친과 결국 연인이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콜라의 맛.
그리고 그의 친절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