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Sep 13. 2024

여행은 결국 사람이다

트래블서치 오키나와



20대 시절의 나를 다시금 돌아보면 절반은 여행이었다. 좋은 기회로 미국에서 살아볼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양성을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하여 결국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됐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 후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게 되었다. 다른 대륙과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삶을 경험함으로 나라는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야 될 삶은 어떤 다름을 추구해야 되는지 고민했고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늘 새로운 사람들이 궁금하고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또 어떤 짐을 짊어지고 사는지 궁금했던 나는 더 넓고 더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다양한 여행을 해 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종도 성향도 성별도 취향도 모두 다른 이들을 말이다. 그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만 느끼고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믿는다. 누구든 자신만의 것이 있음으로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 여긴다. 그것은 나이, 성별, 인종 등과 관계없이 누구에나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 반대도 존재하기에 항상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 위해 나만의 기준을 확실히 세워 나가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좋았다. 그 인연이 여행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들이 되기도 했으니 결국엔 여행에서 남은 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경험과 견문을 쌓았다는 점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삶은 지속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 그 지속성 안에 계속해서 함께 한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다 여긴다.


홀로 떠난 최초의 여행인 강원도에서도, 첫 해외여행인 미국에서의 1년간 어학연수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1년간 호주에서의 워킹 생활도 그랬다. 남미배낭여행도 그랬고, 미서부 캠핑카 여행도 그랬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남을 수는 없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고,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 머물러 있다 하여 의미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절인연이라 할지라도 그 시절과 순간을 함께 보냈고, 그 시간이 좋았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하려는 편이다. 하지만 현재도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많은 감정을 가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도 언젠가는 과거에 머물 수 있다는 것 또한 당연히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인연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삶은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기에 지나간 것에도 그곳에 나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겠다.





두 번의 해외에서의 삶과 한 번의 긴 여행 이후 사실 나에게 여행은 좀처럼 오지 않았었다. 간간히 짧은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이전만큼 여행에 대한 갈망과 니즈가 많이 없다는 게 사실이었다. 이유는 이미 많이 경험해 보았기 때문도 있고 우선 해야 할 일들을 해내는 것이 바빴기 때문이다. 홀로 서울에 정착하여 잘 살아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에 지난 몇 년간은 오로지 직업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속에서 난 스스로 살아냄을 터득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삶에 여유도 생겼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 들다 보니 그간 했던 고민과 걱정들 그리고 다양한 도전들이 모두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올해를 돌아보니 진짜 일밖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야근에 야근... 끝없는 일 폭풍 속에 약간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하기 싫다거나 그러진 하진 않았다. 일 자체는 재미있고 좋았으니까. 하지만 조금의 쉼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굉장히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떠나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디를 갈까? 처음에는 몽골을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가길래 나도 약간 덩달아 가 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뭔가 남들이 가는 여행 따라가는 느낌도 있고, 투어사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지며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조금 꺼려졌던 게 있었다.


다음으로 생각했던 곳은 바로 터키였다. 뭔가 옛날부터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가려니 긴 비행시간과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는 예전의 남미를 누비던 과감한 내가 사라진 걸까? 솔직히 말하면 좀 귀찮고 계획을 세우고 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막연히 고민만 하다가 우연히 인스타에서 광고를 보게 됐고, 오키나와에 끌렸다. 5년 전 한 번 오키나와를 방문했었다. 그때 난 주중에는 은행경비원을 했고,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며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사진 한 장에 꽂혀 홀로 3박 4일간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때 너무 좋은 기억이 있었던지라 이번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패키지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 서부 캠핑카 여행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반추해 보면 난 사람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있다면 나이였다. 2030대들이 모이는데 물론 30대이긴 하지만 이미 많이 지난 30대라 너무 어린 친구들만 있으면 뭔가 함께 어울리지 못하거나 혹시나 모를 빌런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지금을 보자면 너무나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4박 5일 투어동안 너무 즐거웠고, 생각보다 더운 날씨였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았기에 그 더위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정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고 이끌어줬던 인솔자 두 친구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떠나온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에 나름 들뜬 것도 있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준도 너무 반가웠고, 덕분에 힐링 제대로 하고 왔다.


누구 하나 모난 사람도 없고, 불평불만인 사람도 없었다. 16명이 모였는데 이렇게 다들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또 있을까?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나이는 내가 가장 많았고, 다행히도 내 또래 애들이 몇몇 있어서 연령대는 은근히 다행했다. 그만큼 다채로웠고, 다양했기에 어울리기에 좋았다.



자유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쫄깃함과 긴장감은 없지만 그 반대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고, 매일 일정이 정해져 있어서 굉장히 편했다. 비록 자유로움은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남들이 가 볼만한 곳은 다 가 볼 수 있었고, 또 더운 여름날 고생하지 않고 여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역시 현지인 친구를 사귀거나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야 뭐 지금까지 워낙 그런 경험이 많아서 괜찮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런 점이 조금 아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번에는 다른 여행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대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나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다. 그들 중에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 만큼 가능성이 충분한 친구들도 많아 보였다. 궁금한 것들도 많고 알고 싶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 시기인 만큼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경험들을 알려줄 수 있었고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뭔가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걔 중에 한 명은 꾸준히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내가 해 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아 보였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나도 조금 신기했다. 특히 책에 관해서 많이 물어봤던 것은 조금 의외였다. 그런 사람이 솔직히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도 그 친구 한 명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참 많은 것들을 해 왔다는 생각이 새삼 들게 됐다.




나란 사람 자체가 원래 분쟁하길 싫어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민감하게 받아 들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편이라 여행을 하면서도 불편한 점이 크게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함께 한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보니 더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도라이 질량 법칙은 어디든 꼭 존재하기 때문에 도라이가 없으면 그게 나 일수도 있다는 의심을 헤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빌런이었을까? 드디어 나도 꼰대가 되었을까?


나중에 투어가 거의 다 끝날 때쯤 가이드를 담당해 주었던 친구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런 단체 여행을 직접 인솔하고 진행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한 사람으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말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오염시키니까. 그것도 대장 미꾸라지면 영향이 크게 미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내가 아이들을 편하게 대하니 아이들도 나를 편하게 대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편해졌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나이가 많다고 이것저것 시키고 약간 나이 부심을 부리며 아이들을 깔보거나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뭘 알아? 같이 무시하는 투로 말하고 행동했다면 아마도 분위기는 편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딱히 내가 한 것은 없다. 그냥 나는 원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회사에서도 난 비슷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슷하다. 사람에 따라 가면을 달리 쓴다 하지만 내가 쓴 가면은 그렇게 결이 다르지 않는 비슷한 가면들이라 새로운 사람을 봐도 솔직히 차이가 크게 없다. 고로 난 별로 한 게 없다.



원래부터 특별히 잘 난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좋은 회사를 다니고 나보다 훨씬 능력이 많아 보이는 아이들을 보니 더 대단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난 이제야 자리를 잡아 가는데 이들은 20대임에도 사회적으로 오히려 나보다 많은 것들을 이룬 것을 보니 또 하나 더 배우는 시간이었다.


여행지에서 봤던, 티 없이 맑고 깊은 바다와 드넓고 탁 트인 하늘보다 함께 웃었던 그들의 표정과 따뜻했던 말들이 더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결국 여행은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좋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들과 함께 보내서 행복했던 오키나와에서의 6박 7일이었다. 다시 원래 내 자리로 돌아와 살고 있는 지금 한번 더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짧은 시간 더 가까워지지 못해서 아쉽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기에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더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여행

어디에도 없는 여행

트래블서치 


매거진의 이전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