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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n 22. 2020

서른을 넘어, 어른이 된다는 것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처음으로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있었다. 브리즈번에는 매주 화요일이면 kfc에서 치킨을 할인한다. 아홉 조각에 만원 nine pieces hot and spicy 그래서 화요일이면 많은 워홀러들이 kfc에 모인다. 그날도 퇴근을 하고 집에서 쉬다가 저녁때쯤 치킨을 사러 집 앞 kfc를 들렸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모인 한국인 워홀러들 몇 명이 치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공장에 일하고 있는 분들이 몇 분 있었고 나와 친분이 조금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떻게 워홀을 오게 되었는지, 비자는 얼마나 남았는지, 세컨드 비자는 땄는지 아니면 딸 건지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던 중 누나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워홀을 온 이유는 서른이 되었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통 여자들은 나이가 서른이 넘으면 결혼을 하려고 해. 남자는 서른이면 시작이지만 여자는 아니야. 이미 사회생활을 길면 10년 짧으면 5-6년을 한 뒤거든 그래서 서른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지. 뭔가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는 거야. 똑같은 일상을 몇 년을 보낸 후엔 더 그래. 난 지금까지 뭘 해 온 걸까? 지금 이대로 나 괜찮은 거야? 이직을 해야 하나? 결혼을 해야 하나? 아니면 뭘 해야 하지? 같은 생각들 말이야. 그래서 보통은 그때 남자 친구가 있으면 결혼을 하려고 해. 서로가 뜻이 맞으면 결혼을 하고 그게 아니면 다른 것을 찾게 돼 난 그게 워홀이었어. 물론 남자 친구가 없어서 워홀을 온 건 아니야. 난 꼭 해외에서 살아 보고 싶었거든. 그게 이유야.”


그때까지만 해도 사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7살에 졸업을 하고 호주로 워킹을 와 20대 후반을 지내고 있었지만 나이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지 않았던 터라 잊고 있었다. 계산을 해보니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스물아홉이나 서른 쯤 돼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서른이 된다니 당시에는 믿기지 않아서 그냥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당장은 서른이 아니니까.



한국으로 돌아온지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이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사실 나이가 서른이 넘는다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인생의 판도가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몇 살이세요?라고 물으면 작년보다 숫자 하나를 더 해서 답하는 것 이외엔 딱히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른이 되면 마치 인생에 큰 변화가 올 것처럼 이야기한다.


한 커뮤니티에 이런 질문을 올린 적이 있다.


“한국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답을 달았는데 그들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생각과 개성에 따라 다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들이 있어서 몇 가지 뽑아보았다.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안정’, ‘성숙’, ‘미래’, ‘결혼’, ‘어른’, ‘취업’ 이 있었다. 공감되었던 이야기를 몇 가지 가져와 보았다.


“서른은 20대 청춘이 아닌 나이, 미래를 꿈꾸기보단 이제 실천해야 할 나이, 그러면서도 ‘난 아직 어린데... 내가 어른이라니!’라는 생각에 혼동이 오는 나이죠.”


“남자와 여자는 다른 거 같아요. 남자에게는 시작 단계이지만 여자에게는 끝 단계인 거 같아요. 시작과 끝이라는 건 사회생활을 얘기하는 거 에요. 요즘이야 여자도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하면 더더욱 확연히 드러나죠. 그래서 요즘은 혼족들이 많아진 게 아닐까요?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이 나이 때 모든 게 결정 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서른이란 막연히 뭔가를 이뤘을 어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게 한국에서 서른을 향한 모두의 기대 같아요. 결혼하고 취업한, 안정된 상태 하지만 커서 다시 서른을 바라보니, 그저 삶의 연장선 일 뿐 큰 의미가 없는 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른이지만 여전히 서툴고 어렵잖아요, 우리 모두! 한국에서의 서른은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고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숫자이지만, 이젠 사회적인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30대를 응원하고 싶어요!”


이렇게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사실 우리가 느끼는 건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서른이면 뭔가를 이뤄야 할 것 같고, 이제 20대 철부지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야 할 것 같고, 사회생활을 통해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나이인 것 같다. 그렇기에 서른이라는 나이는 많지도 않은 나이이고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나이이기 때문에 애매한 나이라고 말한다. 뭔가를 갖추기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기엔 너무 많은 나이가 바로 ‘서른’인 것 같다.


서른은 마치 분기점인 것 같다. 서른이 넘으면 이제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나이인 것 같다. 스스로 돈을 벌고 소비하고 독립된 개인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갖추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하는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다. 난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다. 어른은 사실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나이를 먹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진정한 어른은 바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른이지만 마음속에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은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거대한 자연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과 짧은 글 한 줄에도 감동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길 위에 피어난 꽃을 보고 삶을 되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것 말이다.


서른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가 많은 사람 옆에 서면 적은 것이 되고, 적은 사람 옆에 서면 많은 것이 되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서른을 넘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개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숫자를 넘어 내가 나로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사회적 통념을 넘어 나만의 기준을 가지는 것,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진정한 어른이지 않을까. 어쩌면 우린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나잇값을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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