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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n 29. 2020

일을 대하는 태도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은행 일 말고 다른 일과 함께 병행을 하며 지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창업’을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두고 팀원들과 정말 열심히 회의하며 하나하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매 순간 창업에 대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 영향이 은행 일을 하는 것에도 미쳤나 보다.


하루는 일을 하던 중 부지점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부지점장님은 딱히 나에게 대해 크게 불만이나 이렇다 할 불편함을 주지 않는 분이라 괜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워낙 조용조용하신 성격이고 내가 있는 자리와 거리가 멀어 크게 부디 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회의실로 나를 부르시곤 한 마디 하셨다.


“희재 씨 요즘 왜 이렇게 일에 집중을 못해?

요즘 일 하는 거 보면 얼이 빠져있는 것 같아.

일 끝나고 뭐해? 다른 거 뭐 준비하는 거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여기선 이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우린 희재 씨 일 잘할 거라고 기대하고 뽑았는데 요즘 너무 실망이다.

어떤 대단한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도 중요한 일이야.

희재 씨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 진 모르겠지만 우린 희재 씨가 필요해서 뽑은 거야”


눈물이 날 것 같던 걸 간신히 참았다.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것은 나를 좋게 보셨던 부지점장님이 나에게 실망한 것이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에 대한 경중을 놓고 이것은 중요한 일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나눴던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 덕분에 굶지 않고 먹고사는 주제에 정작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건 나에게 아무런 것도 가져다주지 않은데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하지 못해서 인지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을 천하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도 난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준비하던 창업도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계속하고 있는 은행 경비 일만 남았다. 이것은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돈은 정해 져 있다. 월세, 공과금, 교통비, 밥값, 카드값 등등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모이를 나눠 주듯이 한 달에 받는 월급을 꼬박꼬박 나눠 줘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일 덕분에 살아가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전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중간에 거쳐 가는 잠깐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홀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는 이유를 돈 이외에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하는 버릇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일에서 돈을 빼고 남는 게 있다면 그 일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돈을 빼면 사실 남는 게 거의 없다. “왜 그 일을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돈 벌려고요.”라고 말하는 게 사실은 핵심이다. 그래서 난 일에서 돈 말고 다른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조금 편해졌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말이다.


지금은 일에 요령이 생겨 열심히 일을 할 때와 조금 쉬면서 해야 할 때를 스스로 조절하면서 일하고 있다. 은행에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어드리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난 이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마저 제대로 못한다면 진짜 앞으로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을 거 같다.


이제는 은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위치에 있게 되었다. 내가 없으면 그렇게 나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우리 애증의 할머니들은 항상 “우리 총각 우리 총각 어데 갔노” 하면서 말이다. 잠시 밥 먹으러 다녀오면 어딜 다녀왔냐며 한참을 찾았다고 하시니 내가 과연 여길 떠날 수 있을까. 난 은행에서 팀장님 다음으로 인기 많은 사람이다. 근데 내가 이 나이에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아서야 되겠나. 나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나도 장가가고 싶은데 할머니 말고 아줌마 말고 아가씨들에게 인기 있고 싶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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