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항상 비슷한 시간 비슷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그날도 비슷한 시간 비슷한 열차에 몸을 싣고 어김없이 유튜브를 보려고 피드를 슥슥 내리고 있었는데 한 영상이 손을 멈추게 했다. ‘신의 직장’ 정규직으로 다니던 퇴직자가 경비원이 된 후 알게 된 현실‘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 정규직‘과 ’ 경비원‘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기업을 퇴사하고 비정규직인 경비원을 하면서 과연 어떤 것들을 느끼셨을까? 궁금했다.
영상의 길이는 10분 정도였다. 알고 보니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을 쓰신 작가님이셨다. 작가님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기업에서 30년을 근무하셨다. 퇴직을 하시고 난 후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노후를 보내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대도시로 발령이 났고, 예상치 못한 아들의 대학원 진학으로 인해 학비와 집세를 퇴직하고 나서도 부담하셔야 했다. 그렇게 30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도 다시 취업을 해야 했던 것이다. 나이 60세가 넘은 노인을 신입사원으로 받아줄 리 만무했고,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늙은 경력직 신입을 껄끄러워했다. 영화 ‘인턴’과 같은 그런 영화 같은 이야기는 유교사상이 짙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선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몸으로 일하는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작가님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4년 동안 4번의 해고를 당하셨고,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갖은 모욕과 인격모독 그리고 불합리 속에서 버티고 버티셨다. 첫 직장은 작은 버스 회사의 배차 계장이었고, 두 번째는 아파트 경비원, 세 번째는 30층 고층 빌딩의 경비원이었고 마지막은 버스회사 보안관을 하셨다.
“사람들은 나를 ”임계장, 임계장“하고 불렀다.
버스 회사 배차 계장이었던 나는 처음엔 내 성씨를 잘못 알아서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모두 일괄해서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용역 회사에선 임계장을 고다자, 이렇게 불렀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
책을 읽는 내내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한단 말인가. 이게 과연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말인가. 너무 한탄스럽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첫 직장인 버스 회사에선 짐을 싣다가 트렁크에 머리를 부딪쳐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는데 회사는 다음날 해고했다. 아프면 바로 잘리는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에서 일할 때도 경비 업무 이외에 온갖 잡무란 잡무는 다 했다. 겨울엔 너무 추워서 방한 옷 좀 지원해 달라고 했더니 “노인이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냐. 노인도 추위를 타냐”라고 말하며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내 손을 잡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자네는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강철 같은 정신은 있을지 몰라도 강철 같은 몸은 없다고 했다. 작가님은 결국 몸을 돌보지 못하시며 일하시다가 세균이 척추에 감염되어 7개월 동안 입원하게 되면서 결국 또 해고되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공감을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부당하게 해고를 당해도 어디다 하소연을 할 곳도 없었다.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이면 이런 대우는 당연하다는 듯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비정규직은 당연히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널려 있다.”
이 말은 아파트 자치회장의 ‘언어적 습관’에 가까웠다.
내가 3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나는 용역회사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은행 소속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소속감이 없다는 것은 고립되어 있다는 말이고, 홀로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비정규직이었다면 그 느낌을 조금 덜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에서 나는 ‘혼자‘였다. 나만 빼고 모두 은행 소속이었기 때문에 난 항상 눈치를 봐야 했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것도, 회식을 할 때도 늘 혼자인 느낌이었다. 함께 섞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 같았다. 낙동강 오리알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은행원들 중에 나를 사람처럼 친구처럼 대해줬던 몇몇 분들 덕분에 힘들어도 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도 벌써 그만뒀을 것이다.
간혹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런 거 뻔히 알고 들어간 거 아니야? 그러게 누가 공부하지 말랬어? 네가 공부 못해서 정규직 못된 걸 왜 사회 탓을 하냐? 너의 노력이 부족한 탓을 왜 네 탓으로 생각을 안 해?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맞는 말이지만 뭔가 억울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공부 못하고 싶어서 못한 건가. 내가 정말 노력을 안 한 걸까? 정말 공부만이 정답인 걸까? 이런 생각들이 들면 지금까지 나의 삶은 잘못 살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반대로 30년간 공기업에서 근무하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시는 작가님도 ‘공부’를 못해서 비정규직이 되신 걸까? 아무래도 말에 모순이 있는 거 같다.
한참 임계장 이야기 책에 심취되어 있던 중 뉴스에서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바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의 갑질에 못 이겨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입주민으로부터 폭행과 폭언 협박에 못 이겨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셨던 것이다.
우리나라엔 갑질이라는 것이 사회에 만연하다. 갑질이란 계약 관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특정 행동을 폄하해 일컫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우월한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에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말한다. 한마디로 약자에겐 강하지만 강자에겐 약한 사람들이 거의 갑질을 많이 한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위치, 직급, 신분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내가 손님인데 혹은 내가 상사인데 같은 신분으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내가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인 걸까? 가끔 갑질을 했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꿀 때도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이제 자신이 가진 계급과 위치가 상실되어 더 이상 갑의 위치가 아니게 되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과를 한다. 이렇듯 사회에선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 그 우월함을 뽐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약육강식의 세계인 정글과도 같은 곳이 사회인 것이다. 그렇게 약자인 사슴이나 토끼 같은 동물들은 사자나 이리에게 무참히 찢기고 밟혀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도 동물인가? 본능대로 움직이는 짐승인 것인가? 칸트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동물이 아닌 이유는 ‘이성’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들은 동물들보다 더 잔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동물도 자신과 같은 동족은 사냥하지 않는다. 하물며 동물도 그럴진대 어째서 인간은 같은 인간을 산산이 무참히 찢어 버리느냔 말이다. 난 아직도 분노를 느낀다. 나 또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갑질을 당할 수 있고, 내 목숨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이 얇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은행 경비원은 노조도 없다. 우린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로 모이기가 힘들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잘리더라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 결국 법도 갑을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조정진 작가님은 말했다. ‘나이 많은 노인은 살아온 관록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목숨을 던지지 않는다.’ 했다. 억울하고 분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들어주는 이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이뿐이겠는가. 사회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런 일은 아직도 만연하다. 과연 공부를 못한 것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걸일까? 정녕 신분상 승만이 공부의 목적일까?
이런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것뿐이다. 이것이 작고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부디 우리 사회가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뀔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글을 쓸 것이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 조금은 여유 있는 행동,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만 가진다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픈 만큼 타인 또한 아픈 법이다.
지금 내가 정규직이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평생 그 위치에 있으란 법도 없다. 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내가 한 행동과 내가 한 말은 언젠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그러니 방심하지 말자.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다.
ps. 고 최희석 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