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오래간만에 부산을 다녀왔다. 부산을 갈 때면 늘 좋다. 고향에 왔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느낌이 날 포근하게 만들어서 좋다. 계속 부산에 살았다면 아마 느끼지 못할 것이지만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느낌이다. 부모님도 자주 뵙지 못하기 때문에 가끔 뵈면 그렇게 잘해 주신다. 특히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주신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보다 더 잘해주신다. 내가 부산으로 내려오는 날은 우리 가족 외식하는 날이다. 심지어 이번엔 이틀 연속으로 외식을 했다. 하루는 소고기 다음날은 대게를 먹었다. 배가 터지는 날들이었다. 소고기는 동생이 대게는 엄마가 샀다. 난 돈이 없어서 못 사 드렸다.
동생은 부산에서 사업을 한다.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엄마는 동생이 하는 사업을 도와 같이 일을 하고 있다. 머지않아 아버지도 퇴직을 하신다면 같이 일을 도와서 하실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걱정이 없으신 거 같다. 보통 60이 넘어 퇴직을 하면 다음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아직 살아야 할 날은 많이 남았고 돈은 계속해서 드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치킨 집이 많은 이유가 퇴직하고 할 만한 게 그런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모하게 퇴직금을 쏟아부어 가게를 열어 새롭게 시작하지만 장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하기 에는 시행착오가 크다. 그렇게 한 번 실패를 하면 다시 시작하기가 무척 힘들다. 젊을 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나이를 많이 먹고 나면 제기하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하고 철저히 계획을 세워서 도전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동생이 이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쉽게 다음 일에 도전할 수 있어 걱정이 덜하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나 일 것이다. 서울에 간지가 벌써 4년이 넘어가는데 이렇다 할 소식도 없이 그저 버티고만 있는 거 같아 보이나 보다.
이번에 부산에 내려갔을 때도 아버지는 나흘 동안 아무 말씀 없으셨다가 서울 올라가는 기차를 타러 집을 나서기 직전에 한 마디를 때셨다.
“언제까지 서울에 있을 거냐 너도 어서 자리 잡아야지.”
“그냥 부산 내려올까요?”
말은 장난스럽게 했지만 속은 쓰렸다. 부산을 내려온다는 뜻은 동생을 도와 같이 일할까요?라는 말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그러길 바라실 거다. 곁에 있으면 자주 봐서 좋기도 하고 내가 동생을 도와 사업을 한다면 보다 잘 될지도 모르고 자리도 금방 잡을 수 있을 거기 때문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아버지 생각대로 한다면 모두가 좋을 거라고 하지만 난 아직 서울에 있다. 아직은 말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힘들고 울고 싶을 때 그냥 푸념 섞인 말로 엄마에게 그랬다.
“그냥 부산 내려갈까 엄마.”
“그렇게 힘들면 내려 온나.”
내가 진짜 내려가려고 하니 엄마는 오히려 화를 내셨다. “그렇게 나약해 빠져 가지고 뭘 하겠다고 하는 거냐. 네가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다.”라고 쓴소리를 하셨다. 아니.... 내려오라고 할 땐 언제고.... 이래서 갱년기 엄마는 무섭다. 사실 엄마의 본심은 내가 지금 힘들고 어려운 걸 이겨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어떻게든 해 내길 바랐을 것이다. 엄마의 쓴소리에 난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직까지 아무 말씀 없이 그저 반찬이 없다고 하면 아이스박스에 한가득 담아 보내주고 가끔 부산에 내려오면 애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 소고깃국과 불고기를 한 가득해주시기만 할 뿐이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남들처럼 자리 잡고 장가가고 애도 낳고 부모님 선물도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그래야 하는데 난 아직 자리도 못 잡고 장가도 못 가고 애도 못 낳고 (물론 내가 낳는 건 아니지만) 여행도 못 보내드리고(이 글을 쓴 후에 7월 초에 부모님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선물도 못 사드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이러고 있는 이유는 그냥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나도 부모님께 남들처럼 해드리고 싶다. 사실 소고기도 내가 사야 되는 거고 올해 아버지 환갑이신데 여행 보내드리고도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잘되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올해가 시작되며 그리고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다짐했다. 이게 나의 마지막이라고 내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고 말이다. 이 글이 책으로 나오든 나오지 않든 올해가 끝나도 지금의 내 상황이 전혀 변화가 없다면 미련 없이 서울 떠나 부산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 글이 책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내 생활에 그렇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은행 경비 일은 계속해야 할 것이고, 여전히 돈은 없을 것이고 여전히 부모님 소고기도 못 사드리고 여행도 못 보내 드릴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도 책이라는 게 나오면 어디다 자랑할 거리 하나는 만들어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 하 실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 그때 다짐했던 것들이 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제는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 이것 하나만이라도 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올해 이것 하나만 해내도 난 잘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고 부모님께 소고기는 못 돼도 돼지고기 정도는 사드리고 싶다. 여행은 못 보내 드려도 책 속으로 여행을 시켜 드리고 싶다. 그런 한 해가 될 수 있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이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