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누구나 사람이라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면, 직업을 가질 것이다. 어떤 일이 되었건 재화를 취득하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노동을 함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체제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여길 수밖에 없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처럼 되어 버렸다.
일은 어떤 이에게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기도 하다. 일은 고통 그 자체이고 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일로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일 뿐 그 이상의 가치를 두는 것은 너무 일을 과대평가하는 처사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은 없다. 모두 개인의 생각과 경험의 차이일 뿐이다.
어떤 일을 할까?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문제 일 수 있다. 한 개인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이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받는 모든 기본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의 것들은 어쩌면 큰 틀에서 나에게 알맞은 일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잘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한다! 또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나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강연을 한다면 꼭 하는 질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다. 이제는 듣기도 식상한 이 질문을 사람들은 매번 꾸준히 한다. 왜 그럴까? 그만큼 일이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24시간 중 자는 시간 5-7시간을 제외하고 밥 먹는 시간 볼일 보는 시간 쉬는 시간을 빼고 남는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일하는 시간이다. 하루 8시간 많게는 그 이상을 쓰는데 그 시간이 힘들고 불행하다면 아마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불행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로써 어떤 성취감이나 그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찾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들이 존재한다. 사실 얼마나 되는지 세보지 않았지만 수 만 가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많은 일들 중 내가 고를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은 직업을 하나 이상 가지는 것이 가능하기에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그래 봐야 다섯 가지? 정말 많은 사람은 뭐 열 가지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수 만 가지 일에 비하면 현저히 작은 수이다.
내가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옷도 눈으로 봤을 때 예뻤던 것이 막상 입어보면 별로 일 수 있듯이 일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살면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총량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내가 해 본 것들 중에 그나마 가장 괜찮은 것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우리에게는 여유가 없다. 여유를 가지고 이것저것 경험해 보면 좋겠지만 사회는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늘 타인과 비교하게끔 만들어 하나를 채우면 또 다른 것을 채우라고 요구한다. 토익 점수를 만들면 그다음은 자격증을 따야 하고 그다음은 대외활동을 해야 하고 그다음은 인턴 경험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은... 끝도 없이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유롭게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충분히 입어 볼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우린 없다. 그렇기에 적당히 보고 괜찮으면 그 옷을 사서 가게를 나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뭐 괜찮은 거지”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아마 일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 중에 더 나에게 잘 맞고 잘 어울리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여유가 없어서 또는 경험해 보지 못해 스스로 합리화를 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영원히 나에게 맞는 옷을 찾지 못할 수 도 있다. 반대로 정말 운이 좋아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고르는 사람들은 행운아일 것이다.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난 그냥 일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돈과 연관되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돈과 연관되면 일은 변질되어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돈 때문에 일이라는 본질이 훼손되고 변질되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지만 내가 쓰는 글이 대중들과 맞지 않아 인기가 없으면 그것으로 먹고살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기보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게 되고 그것은 나에게 결국 고통을 안겨 주게 된다. 그래서 결국에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 버리기도 한다. 정말 운이 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글이 대중들도 좋아하는 글이면 정말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우연성만 바라보기에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난 일에 그렇게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로 한다. 돈을 버는 것은 그것만큼 더러운 일이기에 그만큼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삶이 어찌 그렇게 핑크빛으로만 가득하기를 바라는가. 어차피 삶은 고통이다.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함이다. 그렇기에 잘하는 일이든 좋아하는 일이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해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것을 경험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자신이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침에 일어나 지하철만 타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해내는가를 말이다. 그래서 그런 입 발린 말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탐구하는 것은 꼭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움직이고 경험해보고 부딪쳐 보며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로 승화시킬 필요는 없다. 앞에도 말했듯이 돈이 끼어들면 본질은 훼손되기 마련이니까. 그것은 그것대로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 그러니 너무 고민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내가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 움직이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