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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l 26. 2020

여행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들

나답다는 말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나다움을 강조하는 책이나 강연 등이 미디어에 노출이 되었다. 그런 영향에서 인지 나를 찾겠다는 명목으로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역량을 살려 창업을 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찾고 나답게 살기 위해 도전했다.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서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금 그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난 지금까지 나답게 살아왔을까?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는가?


나답다는 말은 아마도 자연스럽다는 말고 일맥상통해 보인다. 자연스럽다의 ‘자연’의 의미는 한자로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으로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어떤 인과에 의해서 원인과 결과가 생겨난 게 아니라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그런 자연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나답다는 말도 그러하다. 환경이나 상황 또는 외부의 것으로 인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나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나다울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존재하고, 타인에 의해 말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행동 또한 제약을 받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본능대로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도덕과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특히나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가 두드러지는 곳에선 나답기가 힘들다. ‘눈치’라는 말을 많이 쓰는 이곳에선 눈치가 없으면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눈치가 없다는 말은 눈치가 있는 사람에 비해 뭔가 부족해 보이는 느낌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눈치란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또는 어떤 주어진 상황에 때에 맞게 빨리 알아차리는 능력, 혹은 그에 대한 눈빛”이다. 눈치가 중요시되는 한국에선 다른 사람의 마음과 기분은 잘 알아내면서 정작 자신은 어떤 기분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잘 알아내지 못하는 듯하다. 


미국에 있을 때 친구에게 한국에는 눈치를 보는 문화가 있다는 말을 영어로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눈치’가 영어로 뭘까 하고 사전을 검색했는데 사전에는 눈치라는 영어 단어는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설명할 뿐 단어의 정의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이란 나라는 남에 눈치를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보다 자신의 처지와 기분을 더욱 잘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을 1년간 그곳에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집단주의가 주를 이루는 한국사회는 문화가 발전하며 점점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두 문화가 혼재되어 잘 어울리면 좋겠지만 내가 볼 때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 맞부딪히는 것 같다. 세대가 지나면서 점점 개인주의 문화를 이루는 세대가 생겨나지만 아직 한국은 과거 집단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둔 윗세대들이 사회의 주를 이루고 있다 보니 여러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 다움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난 지금까지 나다워 지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시도하고 도전해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발견하는 과정을 지금도 하고 있다. 최초에 내가 나답다 라는 것을 느낀 건 바로 여행을 통해서였다. 대학을 졸업한 동시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취업을 목전에 두고 취업을 하는 대신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분위기에 또는 상황에 휩쓸려서 간 것은 아니다. 당시에 난 무엇보다 간절했고, 살면서 내가 스스로 원해서 어떤 것을 가져 보거나 해보는 게 중요했다. 그 동기는 온전히 내 가슴속에서 우러러 나와야만 했다. 그것을 철저히 검열하고 검증하는 절차를 스스로 밟았다. 그리고 떠났다.


그 한 번의 여행으로 어쩌면 내 삶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여행 한 번으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 전에는 도전정신, 자립심 같은 건 나에게 없었다. 하지만 이 여행 한 번으로 사람들은 나를 말할 때 도전정신이 투철하다 혹은 뚝심이 있다, 자립심이 강하다는 말을 한다. 내가 바뀐 걸까? 어쨌든 난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반대로 많은 것을 잃었다.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았지만 안정적인 직장과 그에 따르는 금전적인 능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물으면 그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렇다고 답하기 애매할 뿐이다. 단, 내가 깨달은 것은 나답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사실은 여행 중에만 깨달았지 여행을 끝내고 난 후 일상에선 달랐다. 일상에서 나다움을 찾는 건 또 다른 별개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행은 결코 일상이 될 수 없다. 여행은 여행이고, 일상은 일상인 것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는 일상에서 나를 찾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린 지금 여기 현재 나를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행을 하며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나다울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가장 나를 나답게 해 줬던 건 바로 독서이다.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배움을 원했던 나에게 독서는 유일한 친구였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공부를 할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지적 탐구를 하는 건 곧 나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마치 여행과 같았다. 독서는 여행과 같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체화시키는 과정이 닮았다. 세계는 한 권의 책으로 담을 수 있고, 한 사람의 생애도 한 권의 책으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닮았다. 그래서 난 책을 통해 여행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현재의 고민과 상념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나를 지울 수 있었고, 그러므로 나를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저 좋아서 읽었다. 그것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은 사람을 발전시킨다. 그것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은 사람에겐 꼭 필요한 것이다. 경험도 간접경험과 직접 경험이 있다. 간접적인 경험은 타인의 경험을 듣거나 보거나 하는 것들 예를 들어 독서가 바로 간접경험의 예이다. 여행 책을 통해 타인의 여행을 읽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 보는 것들이 모두 간접경험인 셈이다. 그렇다면 직접 경험은 바로 직접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여행을 직접 가보는 것, 프랑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직접 보는 것이 직접 경험이다. 독서가 간접경험이라면 글쓰기야 말로 직접 경험이다. input이 있으면 output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간접경험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것이 없다. 모두 타인으로 비롯된 것들이기 때문에 내가 없다. 반면 직접 경험만 많은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내가 한 경험이 곧 진리라고 여기게 된다. 꼰대가 되기 쉽다. 그래서 사람은 두 가지의 경험을 고루 경험해야만 한다. 


방에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건 바로 책장과 책상 그리고 책들이다.




글쓰기는 독서보다 더 깊이 나를 성장시켜 줬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가 가진 페르소나와 검은 그림자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게 해 줬다. 

처음 글을 쓸 땐 일기와 같았다. 하루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배운 것들을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는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 덕분에 억지로 라도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을 글쓰기에 매달리다 한 가지 목표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1년 6개월간 했던 나의 여행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출판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6개월간 여행기를 썼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글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여행기에 대한 내가 가진 선입견 때문이었다. 여행 에세이는 무조건 희망 찬 이야기를 써야만 할 것 같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자극적이거나 스토리 위주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점점 인위적인 글이 되어 버렸다. 어느새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와 글 속에 나는 너무나 다른 나였기 때문에 나답지 못했다. 글 속에 여행하고 있는 난 행복한데 직접 글을 쓰고 있는 난 글 속의 나만큼 행복하지 못했기에 그 괴리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글쓰기를 포기했다.


6개월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나다운 글을 쓰려면 가장 솔직한 글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어 오면서 느낀 건 소설이 아닌 에세이는 가장 솔직할 때 글이 빛을 발현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숨기고 싶은 지질한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검은 그림자를 드러내고 그것 또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진정한 나다운 글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말이다. 그랬더니 그렇게 떨어지던 브런치도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은행 경비원으로서의 삶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지금껏 숨기기 바빴던 나를 세상에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랬더니 비로소 글 쓰는 게 즐거워졌다. 아직도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긴 하지만 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없었다. 이런 나의 마음이 전달된 걸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독자들이 댓글을 달아주신다. 그중 “진심이 담겨 있는 글”이라는 말이 난 가장 듣기 좋았다. 내가 원하는 바를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일상에서 나다운 것을 찾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로 인해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나를 찾는 여정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삶은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나에게로 이르게 하는 것들을 몇 가지 찾았다. 한 가지는 여행이며, 다른 한 가지는 독서이며, 마지막 한 가지는 글쓰기이다. 이 세 가지는 나를 잃어가는 세상 속에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것들이다. 나는 내 삶이 끝나기 전까지 여행과 독서 그것들을 통해 발현되는 글쓰기를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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