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가장 친한 친구 영인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친구로 지내다 중학교 때부터 친해졌다. 이후로 지금까지 쭉 나와 가장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지내는 곳도 달라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사이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때면 늘 영인이를 만난다. 저번 명절에도 영인이를 보기 위해 연락을 했다. 그러자 그가 내일 중학교 때 친구 2명을 만나기로 했다며 나 보고도 나오라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인데 솔직히 이름만 기억나지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그래도 만나면 기억이 날 거 같아 간다고 말했다. 우리 넷은 그간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했다. 한 명은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이미 결혼까지 한 상태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집 근처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우리들 말고 다른 친구들의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듣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야 너거들 가 기억나나 우리 반 1등 있다이가.”
“누구였지. 가 이름 뭐였노?”
“종석이 아이가.”
“맞다 종석이 그 새끼 공부 잘했다이가.”
“종석이 아이다 종혁이다 임마들아.”
“아 맞나 종혁이나 종석이나 그게 그거지 뭐.”
“니 근데 금마 우째 지내는지 아나.”
“금마는 뭐 공부 잘했으니까 뭐라도 하긋지 대학 서울 어데 갔다 캤노?”
“아마 연대? 고대?”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내 들은 건 금마 지금 절에 있단다.”
“엥?? 절?? 뭔데 스님 된나? 미친 거 아이가?”
“그건 아이고 금마 지금 거기서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거기 있다 카드라.”
“아 진짜? 와~ 그래 공부 잘하던 가도 결국은 공무원 한다 카네.”
“근데 절에 드간지 얼마나 된지 아나?? 우리 이제 서른도 넘었다이가.”
“모른다. 그냥 좀 오래된 거 같드라.”
“와... 답 없네. 그래 공부 열심히 하드만 결국엔 공무원이고 시발.”
난 조금 충격을 먹었다. 사실 난 종혁이를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전교에서도 1,2등을 다투던 모범생이었다. 그의 책가방은 항상 두툼했으며, 뿔테 안경을 쓰고 구부정한 허리에 널따란 가방을 메고 다니던 게 기억이 난다. 그와 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같은 반이었지만 딱히 친해질 구실도 없었고, 그는 늘 공부만 했고, 난 늘 친구들과 축구만 했으니까.
중학교 졸업 후 각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고, 우린 남남이 되었다. 그 후로 15년이 흘렀다. 우연히 들은 그의 소식은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난 그가 공부를 잘한 만큼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가 어떻게 사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냥 친구들이 그의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열심히 살았으니까. 정확히 알진 못 하지만 그는 아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나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진 모른다. 이미 공무원에 합격을 했을 수도 있다. 다만,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공무원 준비를 했다는 건 아무래도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떤 삶이 평탄할 수만 있겠냐만은 적어도 전교 1등 하던 그가 지금까지 공부 때문에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했다.
주위에는 종혁이 말고도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 더 있다. 친한 친구의 여동생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친구는 늘 여동생과 비교가 되었다. 친구도 물론 공부를 잘했다. 반에서 5등 안에 들었기 때문에 잘하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친구의 여동생은 반에서 1등이었다. 동생에 비하면 못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늘 친구에게 동생과 비교를 했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여동생은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그 여동생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한 번은 친구가 나에게 아주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사실은 내 동생 연락이 안 된다. 서울로 갔다이가 행정학과였거든. 행정학과 나와가꼬 뭐하긋노. 그래서 그냥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엄마가 그카데 근데 있다이가 그게 언제부터 그 지랄했는지 아나? 지금 7년째 그러고 있다. 미친 거 아이가. 근데 문제는 연락도 안 되고 어디서 사는지도 모른다. 내 작년 크리스마스에 카톡 보낸 거 지금 9월인데 아직도 안 읽고 있다. 미친 거 아이가.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하고는 연락한다는 거다. 근데 엄마도 말을 안 한다. 뭐 하는지 살아는 있는지. 진짜 돌아삐겠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공무원 그게 뭐라고 그게 뭔데 다들 이렇게 가족과 연까지 끊으면서 그렇게 목을 매는 걸까? 그렇게 공부를 잘했던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되어 버린 걸까? 이 친구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몇 명이 더 있다. 출판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이 친구도 3년째 공부만 하고 있다. 언제 합격을 할지 알 수 없는 끝없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다던 공무원에 합격한 사람도 있다. 올해 친해진 그는 나보다 4살 많은 형이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함께 있으면 유쾌하지만 둘이 있으면 누구보다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형과 있으면 왠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된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형과 나 그리고 다른 동생 한 명과 서울 근교에 놀러를 간 적이 있었다.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소개팅 이야기가 나왔다. 형은 혼기가 가득 찬 30대 후반이라 여기저기서 소개팅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많이 들어와서 조금씩 했지만 아무래도 소개팅은 별로 내키지 않아 여러 번 거절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올해 들어서는 소개팅해주겠다는 사람이 점점 줄어서 내심 속으로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공무원이라서 소개팅도 많이 들어오는구나.’하고 말이다.
동생을 집으로 대려다 주고 형과 난 숙소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 형이 그랬다.
“난 네가 얼른 글로 돈을 벌어봤으면 좋겠어. 내가 잘 알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수로 지낸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말이야. 그래서 얼른 뭐가 되었든 빨리 그 시기를 벗어나야 해.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네가 더 힘들어져.”
“네 맞아요. 일단 열심히 글은 쓰고 있어요.”
“그래 그건 좋다. 그런데 네가 쓰는 글은 어떤 글이야? 뭘 이야기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전 그저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으면 싶어요.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누구나 이런 고민과 불안을 가지고 사는구나.’ 하는 거요. 제가 책을 읽고 가장 위로를 받았을 때가 제가 하던 고민들이 나만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요. 사실 누구나 고민이 있고, 걱정이 있잖아요. 근데 그게 내가 못나서 그런 줄 알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싶어요.”
“그래 좋네. 근데 넌 뭘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은 건데?”
“전 솔직함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거냐면 이런 거예요. 아까 형 소개팅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전 누가 소개팅할 거냐고 묻지도 않아요. 왜 그런지 말 안 해도 알겠죠? 그런 거예요. 어쩌면 좀 지질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런 솔직함이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 진짜 말하기 힘든 건데 대단하네. 그런데 작가가 된다 해도 사실 먹고살긴 힘들잖아. 완전 대박을 치지 않고는 어쨌든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게 좋을 텐데. 난 네가 공무원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사실 소방공무원만큼 개인적인 시간이 많은 곳도 없어. 나도 예전에 보험회사 다닐 땐 진짜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몰랐거든. 근데 지금은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 내가 일을 하면 사람들에게서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일이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더라고. 난 네가 한번 해 봤으면 좋겠어. 사실 어렵지. 그런데 이거 진짜 마음 잡고 1년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나도 했잖아. 나 진짜 그땐 많이 힘들었다. 그때가 딱 네 나이였을 거야.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 둔 돈도 다 까먹고, 5년 사귄 여자 친구는 결혼 생각하고 있었거든. 물론 지금은 해어졌지만. 아무튼 소방공무원 하면서도 글 충분히 쓸 수 있어. 한 번 생각해봐."
난 지금까지 공무원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공무원이란 직업은 늘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종교 같은 느낌이랄까. 맹목적으로 사람들이 달려드는 그런 어떤 신 같은 존재? 그것만 되면 마치 인생이 천국이 될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그곳에 도달한 사람이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하니 겉으로는 난 안된다고 말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되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같은 생각이 피어올랐다.
사실 지금 내 나이에 다른 직장을 가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은행 경비원도 다시 할 순 있지만 지금으로선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2개 하는 게 낫지 다시 은행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경력도 없고, 스펙도 없고 30대 초반인 내가 신입사원으로 뽑아 주는 곳은 아마도 공장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정도가 다 일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스펙이 없어도 시험만 합격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보였다. 공정해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에 목을 매는지, 왜 그렇게 가족과 연을 끊으면서까지 그것에 매달리는지. 하지만 난 공무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한다고 봐야 한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평생 내 돈 주고 로또를 사지 않는 것처럼 공무원 시험도 로또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맹목적인 무엇 말이다. 예부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올려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사실 지금도 고민이 되긴 한다. 작가가 된다고 해도 사실 그걸로 먹고살긴 힘들다. 그런데 문제는 난 아직 작가도 뭐도 아니란 거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아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기로 말이다.
형의 조언은 사실 다른 사람들의 생각 없이 던지는 말과는 달라서 난 오히려 좋았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 같았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