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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17. 2020

평균 이하의 삶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오늘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백수가 된 후로 아침엔 알람을 설정해 놓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억지로 잠에서 깨는 게 아닌 깨고 싶을 때 잠에서 깼다. 그게 몇 시가 됐건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에겐 내일 아침 출근이란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8시 반에 일어났다. 평소보다 1시간가량 일찍 일어났다. 원래라면 은행 지점에 도착해야 할 시간이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한동안 헬스장을 가지 못했다. 가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반반이다. 집에 근처에 있는 헬스장은 3주 동안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영업을 잠시 중단한 상태였다. 물론 조금 더 부지런하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집에서 조금 멀지만 그래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다른 지점 헬스장을 이용하면 됐다. 헬스장에서도 다른 지점을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하라며 친절히 알려줬다. 하지만 그런 친절은 오히려 반감으로 돌아왔다. 나에겐 헬스장을 가지 않아도 될 명목이 생겼는데 그건 그저 핑계라는 걸 깨닫게 해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을 게으르게 보내다 오늘은 왠지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8시 반에 일어났지만 당연히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10분 정도 뭉그적거리다 40분쯤 몸을 일으킨다. 화장실을 들려 볼일을 보고 씻지 않은 상태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오니 8시 50분이었다. 내가 사는 신촌에서 새롭게 갈 헬스장이 있는 공덕까지 거리는 도보로 35분 버스로 5분 자전거론 10분 거리였다. 걸어가기엔 조금 먼 거리였고, 버스를 타고 가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버스를 타면 왕복 2,500원이나 되는 차비를 지불해야 했다. 그에 비해 자전거는 한 시간 빌리는데 1,000원이었다. 왕복 1,000원이면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자전거를 빌려 헬스장에 도착하니 9시 15분쯤 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2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씻고 나오니 시간은 오전 11시 반이었다. 이미 점심때가 됐는지 거리엔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거리에 즐비했다. 자전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자전거를 빌려 집으로 향했다. 날씨는 좋았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니 여유롭고 좋았다. 길에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정장에 넥타이를 맸고, 여자들은 정장 스커트에 검정 구두를 신었다. 한 손엔 서류 봉투를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어떤 직장인들은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음식점 앞에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다니던 은행이 떠올랐고, 그곳에서 나도 저기 보이는 직장인들처럼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렸던 게 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횡단보도에 섰다. 내 앞에는 또 다른 직장인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즐겁게 웃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갔고 그들은 나의 뒷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나를 보고 부러워하겠지? 월요일 오전인데 츄리닝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내가 자유로워 보였겠지. 그리고 자신들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또 다른 생각은 ‘그들은 생각하겠지. 젊은 사람이 월요일 아침인데 일은 안 하고 자전거나 타고 돌아다니는 게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 나에게 부럽다고 하는 지인들이 있다. 백수인 내가 직장인들이 보면 부러울 수 있다. 아침 늦게까지 늘어지게 잘 수 있고, 남들 일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난 정부에서 주는 실업급여까지 받고 있기 때문에 돈 받으면서 노는 백수라 어떻게 보면 부러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나처럼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부럽다.”라고 하는 게 진심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실업급여는 평생 주어지는 게 아니다. 4-5개월 동안만 지급되고 그 이후엔 나오지 않는다. 당장 몇 개월 뒤부터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데 그걸 부럽다고 하는 걸까? 매일 불안과 싸우며 다시 취업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부산으로 내려가야 할지 고민하는 내가 부러운 걸까?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쓴답시고 매일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는 내가 부러운 걸까? 그냥 아무것도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하는 부럽다는 말에 신경 쓰지 안 으려고 해도 내 상황 뻔히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조금 짜증이 난다. 그럴 때면 되묻는다.     


“뭐가 부러운 거죠? 부러우면 퇴사하세요”  


점심으로 서브웨이를 들렸다. 자주 먹는 에그 마요를 주문했다. 30cm를 먹고 싶었지만 비싸기도 하고 살도 빼야 하니 그냥 15cm를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조금 배가 고프다. 편의점에서 사이다를 사려고 들렸다. 그런데 사이다는 1,400원이었지만 웰치스는 1,100원이었다. 웰치스는 사이다보다 양도 많은데 왜 더 쌀까? 맛도 웰치스가 더 맛있는데 이상했다. 그래서 웰치스를 골랐다. 300원 절약했다.


집에 돌아와 밀린 빨래를 돌렸고, 서브웨이를 먹으며 웰치스를 마셨다. 그리고 좀 전에 본 직장인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생각하니 나는 왜 그들처럼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못했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왜 직장인이 되지 못했을까를 생각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왜 평범하지 못한 지를 생각했다. 나는 왜 평균이 되지 못했는지를 생각했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직장으로 출근한다. 매달 나오는 월급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간다. 일은 산더미지만 곧 다가올 주말을 기약하며 오늘도 견딘다. 매일 입는 정장과 넥타이가 지겹지만, 이것이 나의 일상을 버티게 해 주는 것임을 잘 알기에 지겹지만 조금 참아 본다. 그렇게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일 년을 또 살아낸다. 이것이 특별한 일상일까? 아니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아닐까? 그런데 난 왜 그 지극히도 평범하고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일상조차 살아낼 수 없는 걸까?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거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먹던 빵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웰치스를 한 모금 삼키고 그냥 아무 드라마나 틀었다.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평범하다는 것과 평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평범하다는 건 평균이라는 뜻일까? 평범하다는 말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는 말이고, 평균은 ‘여러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값을 갖는 수’를 뜻한다. 보통은 딱 중간이란 뜻이고 평균은 그것을 수치로 나타 낸 것이다. 그래서 평범함과 평균은 서로 닮아있다. 네이버에 평균을 입력하면 따라 나오는 연관검색어들은 평균 키, 몸무게, 근로시간이 있지만 ‘평균임금’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30대 남성의 평균임금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비정규직으로 최저시급을 받고 살아가는 난 과연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 있을까?


오찬호 작가의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한국 임금노동자의 평균소득은 264만 원이다. 신입 초봉이 아니라 1억 원, 10억 원 받는 사람도 다 포함된 평균이 이 정도다. 연봉 3천만 원이 전체 노동자의 평균이다. 그런데 이 소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 노동자 절반이 넘는다. 왜냐하면 월 264만 원은 전체 소득금액의 평균이기 때문이다. 그럼 임금노동자를 소득 순위별로 줄을 세웠을 때 딱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얼마를 벌까? 189만 원이다. 그럼 월 150만 원을 받는 1호는 중간은 아니지만, 중간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란 계산이 나온다.”     


본 책은 2016년도에 쓰인 책이다. 위 내용을 참고한 기사는 2015년도에 나온 기사를 참고했다. 지금은 2020년이다. 5년 전의 평균임금이 월 264만 원이라면 5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2018년도 기준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297만 원으로 집계됐다. 중위소득은 220만 원이라고 밝혔다. 중위소득은 전체 소득에서 한가운데에 있는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중위소득이 220만 원이지만 내가 은행 경비원을 하며 받은 한 달 월급은 177만 원이었다. 평균보다 한참은 떨어진 수치이다. 연령별 평균 소득은 30대가 322만 원이었다.”      

(출처 : https://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416)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내가 한 달에 받는 월급은 평균소득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최저시급이 올랐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 생활수준도 같이 오르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는 평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아예 소득이 없기에 근로자 평균소득에도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취업을 한다 해도 과연 내가 이 나라의 노동시장에서 평균이라는 수치를 기록할 날이 올까?     

평균 이하를 말하니 과거 무한도전이 떠올랐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평균 이하를 고집했다. 외모, 체력, 신장 등등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모여 극한의 체험과 도전을 시도  해 성공을 거두는 스토리를 예능으로 승화시킨 대한민국의 장수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이것은 10년 동안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평균 이하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출연한 사람들은 진짜 평균 이하였을까? 유재석이 무한도전을 1회 출현하면 받는 돈은 1,000만 원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평균 이하가 그들이 받는 임금을 뜻하는 건 아니만 왠지 그들에게 평균 이하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정말 평균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평균 이하라는 것을 개그 소재로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평균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그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기엔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유재석도 처음 시작은 평균 이하였을 것이다. 그가 만든 노래 중 ‘말하는 대로’의 가사에서도 나오듯이 그는 20-30대 때 힘든 청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국민 MC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유느님으로 성장했다.     



평균 이하를 살아가고 있는 나도 유재석까진 아니지만 그냥 평균치의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온다면 난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언제쯤 올까? 아니 아예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한 나에게 평균치의 삶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체스엔 ‘퀴닝’이란 게 있다. 이것은 체스 말 중 가장 약한 졸은 한 턴에 앞으로 한 칸 밖에 전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졸이 상대편 진영 끝에 도달하게 되면 졸은 더 이상 졸이 아닌 다른 말로 변신할 수 있다. 보통은 가장 강한 ‘퀸’으로 변신하기에 ‘퀴닝’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나도 가장 약한 말 졸에 해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어떤 괘도에 도달하게 되면 유재석이 유느님이 된 것처럼 졸이 퀸이 된 것처럼 그렇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떻게든 앞서 말했듯이 내가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결코 ‘퀸’도 ‘유느님’도 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씁쓸해졌고, 아마도 헬스장 인테리어가 끝낼 때까진 헬스장을 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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