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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15. 2020

외로운 서울에서 마음 한켠 의지 한다는 것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여행과 여행이 아닌 것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지도를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는 것? 하지만 난 아직도 서울 어떤 곳은 지도로 검색하지 않으면 찾아가지 못한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다 알 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보면 알 수 있냐고? 굳이 그런 것까지 확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 뭐가 다를까? 아마도 단골이 생기는 것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여행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단골이 생길 여지가 없다. 그럴 시간 없이 얼른 그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도 그곳에 오래 머물게 되면 단골이 생기게 된다. 비록 그것에 터를 잡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반 거주민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건 그곳에 내 발자국을 많이 만들어 놓게 만든다.


꽤 긴 여행을 했던 터라 한 도시에 최대 오래 머물면 2주는 있었다. 2주라는 시간은 여행으로 본다면 꽤 긴 시간이지만 그곳에 산다고 하기엔 많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2주 정도면 동네 구석구석 둘러볼 여유 도는 충분하다. 여유로운 여행자에겐 거리를 다니다 보면 자주 보이는 가게나 사람 심지어 동물들도 만나게 된다. 그렇게 하나씩 나의 발자국을 남기다 보면 자연스레 그곳에 스며들게 된다. 자주 가는 가게 주인과 안면을 트게 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그곳의 구성원이 되어 갈 수 있다. 그렇게 여행과 여행이 아닌 것에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10개월을 살았었다. 어학연수로 갔을 땐 20대 중반 어린 나이었다. 첫 해외 생활이었고,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을 떠나며 살면서 다시 이곳에 올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섭섭함, 아쉬움,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6개월 후 난 다시 그곳을 여행했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는 버스로 2시간 걸렸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이곳은 내가 살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크게 느꼈다. 내가 자주 갔던 식당, 카페, 헬스장, 학교, 공원, 맥도널드, 서브웨이 등 나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했다. 여행하고 있지만 지도를 보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렇듯 여행과 여행 아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오직 나의 발자취를 남기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필라델피아 시티홀


서울에 와서도 점점 여행이 아닌 그곳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점점 성장해 가는 중이었다. 이제 나도 서울 주민이 되었다. 물론 아직 말투는 사투리로 입에 가득 베여 있어 어딜 봐도 지방에서 온 사람이라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독립한 서울 사람이었다. 집 근처에 자주 가는 식당이 생겼고, 자주 가는 카페도 생겼다. 그중 자주 가는 떡볶이집이 생각난다. 그곳은 밤 12시까지 하는 곳이라 야식으로 간단히 먹기 아주 좋았다. 가끔 일이 늦게 끝나거나 다른 볼일로 집에 늦게 귀가하는 일이 있으면 집 길목 어귀에 있는 그 떡볶이집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가끔 가서 떡볶이 1인분을 먹고 집에 들어갔다.      


떡볶이 1인분에 삼천 원이었다. 어묵 한 개 오백 원이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먹은 어묵이 생각났다. 거긴 어묵 하나에 천 원이었다. 그곳 간판은 ‘부산어묵’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곤 “부산은 어묵 하나에 오백 원밖에 안 해요.”라고 주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집 앞에 있는 떡볶이집은 부산에서 먹던 어묵과 같은 값이었다. 같은 서울이지만 다른 서울이었다.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어묵 하나에 오백 원은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항상 1인분씩 떡볶이를 먹으면 주인아주머니는 나에게 어묵 국물을 떠주시면 그 속에 어묵을 한 조각 띄어주셨다. 서비스라며 마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어느 날은 떡볶이를 먹지 않고 어묵만 먹는 날이면 작은 이쑤시개를 주시며 떡볶이 한 조각 집어 먹으라고 하셨다. 그때도 서비스라고 하셨다. 서울 사람들은 다들 깍쟁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서울에도 인심이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아주머니는 늘 웃으시며 가끔 오는 나에게 단골손님 대하듯이 친절히 대해 주셨다. 그래서 그곳이 참 좋았다. 단골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들러서 많이는 아니지만 떡볶이 1인분 정도는 팔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오래오래 장사를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하시고 늘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어느새 힘을 얻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로운 서울 땅에 이방인으로 살면서 작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는 게 좋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가끔씩 들리지만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면 마치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편하고 좋았다. 나도 이제 서울에 단골집 하나 생겼다는 기쁨에 다음에 친구가 오면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떡볶이도 맛있었다. 특히나 만두가 맛있었는데 아주머니는 늘 만두가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하셨다.     


“우리 집은 만두가 참 맛있어요. 이거 냉동만두가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제가 손수 빚어서 만든 거예요. 한번 먹어보고 맛있으면 사 먹어 봐요.”     


그때도 서비스라고 하시며, 만두 하나를 집어 주시곤 먹어보라고 했다. 사 먹지 않을 건데 이렇게 그냥 주시면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난 그냥 사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만두도 사 먹었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마케팅을 참 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고 은혜를 입으면 꼭 갚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한국인의 특성상 거절하지 못해 받아먹으면서 사 먹지도 않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사게 된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이런 계산을 다 하고 지금까지 나에게 공짜로 어묵이며 떡볶이를 주신 걸까? 과대망상 같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아주머니가 그랬다면 능력이 좋으신 것뿐이기 때문이다.



점점 단골이 되어 갈 때쯤 그날도 늦게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출출했다. 그래서 떡볶이나 어묵을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면 뿌연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만두를 찌고 있어야 할 그곳이 깜깜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가게 셔터는 내려가 있고, 영업을 중단한다는 말이 써진 종이와 곳곳엔 가게를 철거하는 거 같이 보이는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사실 조금 충격받았다. 그렇게 갑자기 없어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유난 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을 하며 살아남기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치킨 집들과 그 많은 떡볶이 집들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하지만 그곳은 나에게 약간 특별한 곳이었기 때문에 없어진 곳을 바라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너무 한순간에 없어졌다. 영업을 중단한다면 그래도 자주 오는 손님에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게 해 줬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가게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았던 건가? 설마 그간 서비스로 줬던 것들이 혹시 가게를 접기 위한 재고정리였을까? 간신히 정을 붙일 곳이 생겼는데 그마저도 없어지니 마음이 허전하고 상실감이 들었다.     


떡볶이 집이 있던 곳은 금방 다른 가게로 대체되었다. 카페가 생겼다. 딱히 카페가 생겨야 할 자리가 아닌 거 같은데 생겨서 조금 의아했다. 지금도 길을 가다 떡볶이집이 보이면 그때 그곳이 떠오른다. 아주머니는 지금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잘 지내실까? 건강히 지내시라고 인사도 드리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사실은 홀로 서울을 살아가는 데 이곳이 마음의 위안이 조금 되었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지금도 홀로 서울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내 마음 한켠을 의지할 곳을 찾고 있지만 사실 그런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난 아직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행을 하는 것 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고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서울을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내 마음 한켠 의지할 곳이 생긴다면 그땐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나도 이곳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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