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만에 돌아온 나의 집
한국에서 베를린까지 안타깝게도 직항이 없다. 암스테르담에서 갈아타는 노선을 선택했다. 인천에서 암스테르담까지 비행시간은 14시간. 러시아 영토를 통과한다면 12시간이 걸리지만 몇년전부터 러시아전쟁으로 유럽 항공사들은 그들하늘을 지나지 않는다. 시간과 기름값을 더써서 2시간 더 가야하는것이다. 푸틴이 싫은 수많은 이유중에 꽤나 큰 몫을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14시간을 날아와 도착한 암스테르담의 새벽시간은 예뻤고 안도할 수 있었다. 집에 다와간다는 반가움과 1-2년에 한번 다녀오는 한국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분으로. 태어나서 20대 후반까지 살아온 나라를 여행의 기분으로 다녀오는 것이 익숙해졌고 낯선 유럽에서 집이주는 안도감을 얻게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엄마집에서 나와 우리집 현관문까지 정확히 24시간이 걸렸던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너덜너덜해진채 현관문을 열었다. 열쇠가 한바퀴가 채 안돌아가 문이 열린다. 어머, 한달전 나가면서 내가 문을 안잠그고 간걸까? 그래.. 나는 충분히 그럴수 있지.라고 세상 의심없이 들어서는데 밝게 켜진 촛불이 눈에 들어왔다. 평온하게 쓰고있지만 꽤나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렀고 문뒤에 숨어있던 W도 덩달아 화들짝 놀랐다.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우리집에 미리와서는 밀가루 반죽을 하고 사과를 얹어 파이를 굽고 있었다니. 늘 그의 상냥함에 감탄하고 내가 참으로 감사하는 사람이지만 붙어있다보면 그 고마움을 잠시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간만에 4주동안 떨어져 있다보니 세삼 애틋함이 가득해졌는데 그 정점에 서프라이즈 웰콤 애플파이라니 내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온다. 20시간 밤새 비행기타고 온 내 몰골은 처참했다는게 안타까울뿐.
애플파이 웰콤 서프라이즈에 감동의 물결이 넘쳐흘러 피곤함을 잊었다. 정말 도파민이 나오면 이런건가? 따뜻한 차한잔에 애플파이를 오손도손 나눠먹고(3일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지만) 마주보고 앉았다. 나도 뭐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나답지 않게 오자마자 짐을 풀고 쟁여온 반찬을 꺼내 저녁을 차렸다. 다행히도 이렇게 간단히 차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친구의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이 요기나게 쓰이는 순간이다. 냄비밥만 간단히 하고 반찬가게에서 그대로 들고온 플라스틱통에서 사기접시로 옮겨 담았을뿐이지만 그럴싸 했다. 아, 베를린에도 이런 반찬가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 의미없는 푸념을 하고. W는 고들빼기김치에 반하고 코다리 조림의 뼈를 열심히 발라 먹었다. 건파래무침은 미역줄기와 뭐가 다른지 명란젓은 무슨 생선의 알인지 등등 별얘기 아니지만 끊기지 않는 이런 수다. 같이 앉아 밥먹는게 뭐 대수냐 싶지만 나에겐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일.
시차가 없는듯 있는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났다. 오전 6시. 이정도면 꽤나 양호한 시차적응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4주 가까이 있었지만 내내 새벽에 깨고 짧게 자면서 시차적응을 못했던것같기도. 침대에서 보이는 새벽아침이 안나갈 수 없게 쾌청하고 맑았다. 비가올줄 알았는데 안온다니 나가야 한다. 침대에서 눈만뜬 상태로 '나 하고싶은거 있어. 우리 산책나가자.' 라는 말에 W는 '아.. 너 너무 시차적응 안됐다..'라고 안타깝게 반응했지만 같이 나가준다.
집에서 5분거리 포츠담 상수시 공원은 이정도 거리면 내 정원이 아닐까 싶을만큼 가까운 거리다. 특히나 새벽엔 한두명있는 조깅하는 사람보다 풀 뜯어먹는 양이 더 많고 물위의 오리가 더 많다. 이번 한국방문에선 그어느때보다 즐거웠고 알차게 보냈다. 나이드신 부모님을 뒤로하고 오는길은 언제나 가볍지 않았고 늘 더 자주와야지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살 계획이나 마음은 아직 안생기는것 보면 아직은 내가 있고 싶은 곳은 이곳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