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뻑뻑하게 굳은것 같은데 어쩌나
아침에 눈뜨면 물끓이기. 집에 있어도 여행을 가도 늘 하는 첫번째 습관. 카페인이 없는 차를 마시고 되도록 따뜻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크게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다.
나는 루틴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어쩜 다시 생각해보면 강박이 아닐까라고 오늘아침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는와중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따뜻한 차를 마실 환경이 안되거나 시간이 없어 급하게 바로 화장실로 가 씻고 나가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영 첫 단추가 잘못끼워진 기분이다. 굳이 차한잔 못마셨다고 내 기분까지 영향을 미칠것은 아닐텐데.
루틴을 가장 지키기 좋은 환경은 혼자 사는 것이다. 내가 내시간을 방해없이 계획할 수 있고 온전히 나에게 맞춰진 계획은 크게 틀어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라도 함께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마 어린 아기가 있다면 상상도 못할일일테고.
- 아침에 카페인 없는 차마시기
- 핸드폰을 오래 보기전에 달리기하러 나가기
- 아침식사에는 과일이외의 설탕을 되도록 줄이기
- 늦지안게 저녁먹기
- 욕실과 싱크대는 물기 없이 유지하기
써놓고 보니 주로 먹는 것 위주네. 연애를 하면서 W와 같이 있는 시간이 잦아지고 여행도 자주 다니면서 내 루틴을 유지하지 못하는데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일하고 퇴근하고 오면 이미 저녁 먹을시간이라 나 혼자였다면 '늦지 않게 먹는 것'이 '무엇을 먹느냐'보다 더 중요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찾았다. 그런데 파트너와 함께 먹는 하루의 유일한 한끼인 저녁을 내맘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고, 함께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W에게 빵에 치즈얹어 빨리먹자라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제안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에겐 매우 늦은시간인 8시 혹은 9시에 저녁을 먹는일이 잦아졌다.
오늘도 아침에 함께 산책을 나가자고 차를 끓이며 준비하는데 평소 이시간이면 운동화신고 나가 뛰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그리 열심히 내 루틴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가 뭘까싶었다. 산책도 내가 좋아하는것인데 달리기대신 산책한다고 크게 나쁠것은 없을텐데 말이지. 매일 하는것을 반복하는 상황속에서 얻는 안정감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내 일상이 굳어지는것은 아닌지, 혹시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조바심도 슬금슬금 일어난다.
몸과 마음이 유연한 노인으로 늙고 싶은 바램이 늘 간절한데 이 작은 습관하나 변경되는것에 마음상하고 하루가 불편하다면 나는 이미 유연하지 못한 것 아닐까. 상황에 따라 다른것을 받아들이고 낯선것을 시도하는 일이 생각보다 일상 곳곳에서 삐걱거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말처럼 쉽기는 커녕 어디서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더 중요한건 딱히 의지도 안생긴다는 것이 함정. 편안함대신 두근두근 떨리고 조금 어색하지만 흥미롭고 그런 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영원히 오지 않겠지. 그럴때마다 잊지말자. 몸과 마음이 유연한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