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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비용

호텔을 잘못 예약했다

by 조희진

다음 주에 라이프치히에 갈 일이 생겼다. 멀리 사는 지인이 방문한다고 혹시 나도 시간이 되면 올 수 있냐는 질문에 흔쾌히 간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까지는 도이칠란트 티켓이 있으면 따로 티켓을 구입하지 않아도 3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이기에 큰 부담도 없었다. 지인이 머무는 숙소를 알려줬고 서로 시간상 오래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같은 호텔에서 아침식사라도 같이하면 좋겠다고 했다. ‘호캉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 차려진 호텔 아침 뷔페는 늘 좋다. 막상 여행을 가도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은 일정 욕심에 호텔 조식을 느긋하게 먹는 일이 드물기에 이번 호텔 조식 약속이 꽤나 좋은 기회였다.


라이프치히 중앙역 근처에 있는 프리미어 인 호텔을 검색했다. 자주 사용하는 호텔예약 앱에서 능숙하게 검색하고 나는 이 앱의 VIP사용 자니까 할인도 받아서 단번에 결제를 마쳤다. 멀지 않은 다음 주로 확정된 약속이기에 호텔 예약 조건도 ‘취소 변경 불가’ 조건으로 추가 요금 없이 진행했고 클릭하자마자 내 통장에선 비용이 빠져나간 후 메일로 영수증이 도착했다. 그리고 순간 싸한 기분.


구글맵에 다시 프리미어 인 호텔을 검색해 보니 라이프치히 중앙역 앞에 200미터 간격으로 2개의 다른 건물이 있었다. 하나는 프리미어 인 시티 오페라(오페라 건물이 가까웠고), 다른 하나는 프리미어 인 하네캄. 잘못 예약했다. 나는 시티 오페라, 지인은 하네캄. 왜 싸한 기분은 늘 한발 늦지만 정확하게 오는 것일까. 호텔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변경가능성을 문의했지만 이렇게 물어보고 저렇게 물어봐도 대답은 하나였다. 예약하신 사이트에서만 변경 및 취소가 가능합니다. 혹여나 같은 체인이기에 옮겨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나의 순진한 바람은 AI 같은 직원의 대답에 빠르게 접혔다.


직원이 두어 번 반복해서 ‘예약하신 사이트에서만 변경가능합니다’라고 했으니 다시 예약사이트로 접속했다. 물론 내 예약은 결제까지 완료되었고 취소 시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조건이었지만 인간미 있게도 웹사이트 하단에 작고 희미하게 ‘업체에 수수료 없이 취소 요청하기’ 버튼이 있었다. 취소해 주겠다는 말은 없지만 물어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시티 오페라 지점에서 바로 옆에 있는 하네캄지점으로 옮기고 싶다는 요청을 보냈다. 24시간 이내에 답을 준다니 아직 기다리는 중. 늘 불운과 행운은 번갈아가면서 온다고 믿는데, 가끔은 순서가 엇갈려 몰리기도 하지만 전체 총량은 다르지 않다고 심플하게 믿고 산다. 이번 작은 실수도 다름 행운을 불러오기 전의 불운일 수도 있고, 예약이 변경된다면 내 실수를 이해해 주는 행운일 수도 있고. 정 변경이 안된다면 지인이 지내는 호텔에 추가비용을 내고 아침식사만 같이하는 것도 방법이니까 멍청비용 냈다고 여기는 수밖에.


라이프치히는 4년 전에 1박 2일 한번 방문했었다. 짧지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도시로 베를린에 살지 않는다면 그다음 도시는 라이프치히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젊고 아담하고 예술적 영감이 가득한 생기 넘치는 곳이었다. 많은 곳을 둘러보진 못했어도 중앙역을 중심으로 곳곳에 펼쳐진 공원,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이는 중심도시이자 한때 세계 최대 기차역이 있던 만큼 덩치가 큰 오래된 건물들이 독일식 고풍스러움을 담고 있어서 좋았다. 이 도시가 매력적이고 젊게 된대에는 많은 독일 예술가들이 힘을 써서 예술적인 도시로 키운 것도 한몫했고 대표적으로 봉제공장이 전시장과 카페, 갤러리, 소품샵으로 변화한 슈피너라이가 있다. 뉴욕의 소호도, 독일 베를린도 예술도시로 성장하게 된 바탕에는 ‘저렴한 물가‘가 있었으니 작업실을 구하는데 너무 비싸지 않고 전시를 열기에 마땅한 큰 공간을 어렵지 않게 구 할 수 있는 라이프치히도 같은 맥락으로 예술 도시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가서 또 반하고 오면 다음에 이사 가면 라이프치히로 가자고 마음 굳히고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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