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운 다음은 행운

그리고 또 불운, 행운, 가끔은 몰아오기도

by 조희진

건너편 앉은 여자의 손톱이 반짝거린다. 조금은 과할 수도 있는 핑크빛 반짝이 펄이 들어간 매니큐어가 유난히 예뻐 보여 어디서 샀을까 궁금했다. 이 반짝임이 며칠 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나도 곧 저렴한 반짝이 펄 매니큐어를 사겠지. 누구에게나 어울릴 수 있는 색이 아닌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예뻐 보임은 임팩트가 꽤 크다. 나에게도 어울릴 것 같은 착각도 하게 하고.


손톱과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꽤나 건조하다. 심각해 보이기도 하고. 그에 비해 손톱만큼이나 탐나는 곱슬머리이다. 금발 곱슬머리를 대충 묶어 올렸고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금발엔 잘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실핀이 무심하게 꽂혀있다. 그래도 매력 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매력 있다.


데사우에서 라이프치히로 가는 레기오날반은 서서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가득 찼다. 그중 10대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가을 소풍을 가는 걸까. 국적을 막론하고 어느 10대나 비슷하다. 나보다 더 화장을 잘하는 여학생이 있고 또래에 비해 아직 아기 같은 남자아이들도 있고. 와중 몇 안 되는 어른 같은 남자아이들은 항상 중심에 있다. 가득 오른 자신감인지 허세인지가 오히려 부스터가 되는 아가들.


바깥은 한창 가을이다. 온통 나무가 많아 낙엽도 많다. 가끔 노랑낙엽 가득한 길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여기에 햇살까지 더해지면 잠깐 멍하게 보게 된다. 손에 꼽는 드물게 비가 오지 않는 날에만 보는 진귀한 가을 풍경이라 더 애틋하다. 며칠 전 잘못예약했던 호텔은 다행히 추가 비용 지불 없이 변경해 주었다. 원칙적으로는 변경불가 조건이었지만 같은 호텔의 다른 지점으로 옮겨달라 한 요청이었기 때문에 호텔 측에서 예외적으로 편의를 봐준 것 같다. 이 또한 작은 행운이니 작은 불운이 와도 그러려니 맞이해야지. 불운다음은 또 행운일 테니.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5화멍청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