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란, 그때는 없다가도 지금은 있을 수 있는 것
겨울이 마치 끝날 것처럼 해가 비춘다. 기온도 무려 지난주에 비해 10도 이상 올라갔다. 그러나 모두가 입모아 말한다. 함부로 겨울옷 정리하지 말라고. 베를린은 4월까지도 겨울일 수 있는 동네이다. 변덕이 심한 성격의 사람에게 독일에서 흔히 '4월의 날씨'같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 바람, 햇살, 우박이 번갈아가는 4월이 지나야 그제야 겨울이 끝났구나 말할 수 있다. 봄은 이렇게 올 듯 올 듯 느리게 오면서도 사방천지 꽃과 나무는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겉으로 보기에는 추위에 얼어붙은 마른 가지뿐이지만 나의 눈과 코는 느낀다. 그들은 이미 새 계절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꽃가루 알레르기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봄이 매우 반갑고 설렌다면 그만큼 두려운 것이 꽃가루이다. 2월이 되면 빵집만큼 많다는 독일 약국에 알레르기 약이 진열된다. 독일어로는 호이슈눕펜(Heuschnupfen)이라고 부르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독일에선 거의 대부분에게 있다. 단지, 어느 꽃이고 어느 나무인지 종류가 다를 뿐 없는 사람은 꽤나 드물다.
한국에서 나는 알레르기를 모르고 살았다.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고 몸이 이상하게 반응했을지언정 '감기일까? 뭘 잘못 먹었을까?'라며 불편하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고 넘겼다. 종종 '유럽사람들은 온갖 알레르기를 다 가지고 있다, 한국인에 비해 알레르기가 많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았다. 인종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더 많다기보다 우리는 한국에서 강하게 키워진 것이다. 토마토를 먹었는데 입술이 따끔하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 누구도 알레르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입술이 텄나 보다 정도로 넘겼던 것 같다.
알레르기는 아니어도 비슷한 예로는 밀가루 먹고 속이 안 좋은 이에게 글루텐 예민반응 테스트를 권하지 않는다. 밀가루는 원래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이니 밥을 먹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뿐이다. 우유를 먹으면 으레 배가 아픈 것도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체질이라서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의무로 조그만 우유팩 하나를 먹어야 하기도 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 먹는 것이 건강한 것이고 교육을 잘 받은 집안의 자녀가 해야 할 태도라고 여겼다. 나도 독일에 와서야 알았다. 나의 알레르기 여부를. 늘 비염에 피부가 약해 자주 가렵고 두드러기가 생기는 것은 알았지만 원인은 몰랐다. 부모님도 나와 비슷한 체질이기에 유전적으로 피부와 호흡기가 약하다고만 여겼다.
약 10년 전, 베를린의 어느 날씨 좋은 봄날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자전거를 밀며 걸어 돌아온 적이 있다. 도저히 재채기가 너무 심해서 자전거 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눈물이 나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데 난생처음 꽃가루 알레르기를 지독하게 경험했다. 그 후,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는데 약 35가지 물질에서 한두 개 빼고는 모두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중, 사과, 자작나무, 먼지, 강아지 털 등에 대해서는 매우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결과를 받았다. 충격이었다. 심지어 한국에 살 때는 강아지도 키웠고 16살이된 노견은 지금도 부모님과 살고 있다. 알레르기란, 그때는 없다가도 지금은 있고, 지금은 있다가도 나중엔 없어지는 그런 것이라고 독일에 와서야 알았다.
독일 사는 한인들은 우스갯소리처럼 유럽생활 5년 차면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긴다고 한다. 그리고 5년 정도 고생하면 다시 없어진다고도 한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와는 다른 꽃과 나무들이 있으니 그 들에게 내 몸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알레르기도 잠잠해지는가 보다. 독일은 꽃가루 알레르기가 많은 만큼 영양제도, 치료 방법도, 민간요법도 수백 가지가 있다. 중동에서 많이 먹는다는 블랙 커민 오일(Schwarzkümmel öl)을 1년이 넘게 매일 티스푼으로 한 숟갈씩 먹었다. 꿀도 면역을 높여준다길래 아침 식사마다 먹고 있다. 머나먼 호주의 마누카 꿀 같은 유명한 것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만든 꿀이 훨씬 도움이 많이 된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지역 꽃나무의 꿀을 먹은 벌들이 만든 꿀이니 동네 꽃가루로 고통받는 나에게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기후의 이유인지 내 몸 컨디션의 이유인지는 몰라도 매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심한해는 3월 한 달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도 있었고 약할 때에는 알레르기 없어졌다며 신나서 나돌아 다니기도 한다. 아예 없어지진 않아도 올해는 부디 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챙겨 먹는다. 어제 오래간만에 해가 나고 기온이 오르더니 내 눈도 붓고 콧물도 줄줄 흐른다. 이제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