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입학식 잘 했나 몰라

날이 풀리니 마음이 싱숭생숭 안 하던 옛 생각까지 하는 중

by 조희진

어제는 지인에게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 다닌 지 오래되어 잊고 있었던 입학식. 생각만 해도 뱃속이 오글거리는 긴장감과 설렘 가득한 그날이었구나. 안 그래도 봄 햇살이 비추어 정신 못 차리게 설레는 날인데 '신입생'이라니. 단어만 들어도 벅차오르는 건 40대의 호들갑이려나.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찬 공기에도 불구하고 봄을 맞이하겠다는 의지처럼 얇은 옷차림으로 학교를 갔던 3월이었다. 사건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아도 그 얇은 옷을 입고 오들오들 떨던 추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들떠있던 감정이 오롯이 되새겨진다.


봄날의 신입생 스토리는 유럽에서 살면서 잊고 있었다. 한국과 달리 유럽은 학기의 시작이 9월이다. 실컷 여름을 즐기고 찬바람이 불면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독일은 9월부터 크리스마스 전까지가 1학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여름과 겨울 각각 1달 정도 방학을 하고 명확하게 1학기와 2학기가 나뉜다. 반면 독일은 7-8월에 6주 정도의 기나긴 여름방학이 있고 겨울방학은 따로 길게 없다. 겨울과 봄을 지나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등의 연휴를 각각 2주 정도씩 쉬는 셈이다.


유럽의 여름방학은 매우 중요하다. 휴가가 중요한 사람들답게 여름은 모든 것이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조용한 외곽으로 나가 몇 주를 보내는 여름은 번잡한 도시가 한가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식당도 약국도 문을 닫고 휴가에서 돌아오는 날짜를 문 앞에 붙인다. 미술관도 잠시 전시를 쉬어간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자 첫 배낭여행 도착지였던 파리가 그랬다. 약 20년 전 8월, 파리 시내 한가운데에 도착했는데 상점들의 회색 셔터문이 굳게 내려 닫혀있었다. 작은 쪽지가 붙어있긴 했으나 읽을 수 없는 흘림체 불어였다. 한인 민박에 머물렀었는데, 주인아저씨께 진지하게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아저씨 이 골목 입구에 가게들 다 망했어요? 왜 맨날 문을 안 열어요?"


내 유럽의 첫인상이었다. 압도하는 이국적임은 간판의 언어가 다르고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른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늘 보아오던 네온사인이 없었고 건물만큼 오래된 것 같은 낡은 간판이 상점거리를 가득 채웠다. 번화가를 지날 때에는 으레 들리던 각 상점에서 틀어놓는 유행하는 가요가 파리의 거리에는 없었다. 음악처럼 들리는 주변의 프랑스사람들의 말소리가 대중가요를 대신했다. 파리의 6구 거리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금까지 내가 본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낯설었던 동네가 이제는 더 익숙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 유럽에 살았냐는 듯이 30분 만에 적응하지만 작은 긴장은 늘 지속된다. 버스에서 정류장을 놓치고 지나갈까 봐 초조하고 카페에서 주문을 너무 천천히 해서 뒷사람이 불편할까 봐 정신을 바짝 차린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갈수록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할까 봐 눈치를 보게 된다.


봄바람이 불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왜인지 뭉클하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늙은이 같은 생각에 스스로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베를린에 살 줄 꿈에도 모르고 있을 나의 스무 살 시절이 아련하다. 마흔이 넘어서도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오래 할 수 있는 것 등을 구분하지 못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 시절 고민이나 하지 말걸 그랬다. 이십 대에는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걱정거리 한가득이었는지... 어차피 끝나지도 않을 고민이었는데 말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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