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년 넘게 혼자 삼키며 뚱하게 보냈던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겠지.
내 사주에는 자꾸만 내 감정을 말하라고 한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조용히 혼자 품기만 한다고. 그것이 결국엔 힘들게 만들 거라고 했다. 사주든 점이든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가끔 솔깃할 때가 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믿게 될까 봐 스스로 안 믿는다고 되새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지?' 싶은데 반대로 '그러면, 내가 남들에게 나에 대해 말하는 게 뭘까?' 생각하니 답이 안 나온다.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입바르게 칭찬을 해야 할 때 자주 듣는 표현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나에게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한다. 둘 다 맞다. 매우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적당히 예의를 갖추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만 내 울타리 밖의 사람인지라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아무 책임도 지게 하지 않는다. 들어도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을 부담 없는 이야기라 맞장구를 치고 중간중간 질문을 해가며 무난하게 그 시간이 흘러간다.
가족이나 연인일 경우는 다르다. 내 삶과 깊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나의 상황이 곧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나를 온전히 보여주기도 하며 가끔은 안타깝게도 남보다 덜 배려하기도 한다. 남처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수백 번 들어왔던 반복된 이야기일 때도 있고 혹은 감히 진지하게 듣기 두려운 뼈아픈 진실이 박혀있기도 하다.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적당히 모른 척 대충 듣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대충 듣다 보면 동시에 내 이야기도 대충 전해진다. 일종의 습관이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민망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여기서 시작된 것일까 나의 내 감정을 말하지 않는 습관이.
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작은 불만이 있었다. 작다고 생각했고 넘어가려고 했다. 늘 그렇듯이. 안타깝게도 나는 생각만큼 쿨하고 마음이 넓지 못해서 모든 것이 얼굴에 드러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불만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지못해 남자친구가 먼저 물어왔고 결국엔 유치하고 작다고 생각한 이유를 결국 말했다. 사실, 말하고 싶었다. 어린애 같고 자존심이 상해서 말하지 못하는 내가 참 못났더라. 내 기분이 엉망이고 너의 태도가 불편했다는 이유를 토해내자마자 나를 집어삼킬 듯 둘러쌌던 무거운 어둠의 에너지가 싹 걷혔다. 구름이 가고 해가 난 것처럼.
안 해보던 것, 못해보던 것을 하나씩 해보자고 마음먹은 것 중 하나였다. 불만을 직접적으로 전하기. 감정적으로 돌아가지 않기. 세상에, 이런 것들은 스물두 살쯤에 마스터해야 하던 것 아닌가. 꼭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 나를 평가하는 상사,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나의 감정과 의견을 조금 더 표현해야 한다. 이렇게 한 걸음씩 시작해 가면 두려움 없이 할 수 있겠지. 사십 년 넘게 혼자 삼키며 뚱하게 보냈던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