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시간이 많아서 생각만 하는 중.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체한 것과 위근육이 딱딱하게 뭉쳐있는 것은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어제부터 또 내 위는 딱딱하게 부풀어 올랐다. 갈비뼈아래로 평소보다 묵직하게 튀어나와 있다. 뜨거운 차를 마시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배에 대고 있자니 햇살 따사로운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다. 엊그제 생각해야 할 것들이 정리되지 않아 머릿속이 꽉 차있었더니 더불어 위 근육도 부풀어 올랐다. 스트레스의 신체화는 지체하지 않는다. 즉각 반응을 보이는 것이 쓸데없이 부지런하다.
그래, 머릿속에 엉켜있는 것이 무엇인지 풀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지만 딱히 풀 것도 없다. 오히려 텅 빈 느낌이다. 눈 앞에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수월할까. 막연한 고민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시작해서 답없는 구멍으로 흘러들어 간다. 하루가 무거운 돌덩어리처럼 느릿느릿하지만 굴러는 간다. 그 시간이라는 돌을 굴리느라 진을 다 빼 아무것도 할 여력이 없는 악순환의 날은 위경련으로 마무리한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시간이 많아서라는 결론을 내린다. 가만히 앉아 봄날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는 여유가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치면 생기는 폐해. 사는 거 다 그런 거 아닌가. 종이 한 장 차이의 감정변화가 들쭉날쭉해 좋게 말하면 인생이 풍요롭다고들 한다.
나는 일주일의 반은 베를린의 노이쾰른집에 살고 나머지 반은 포츠담 하펠 강가에 산다. 노이쾰른과 포츠담은 매우 다르다. 힙하다는 베를린 안에서도 가장 하드코어 신이 가득한 노이쾰른은 주말 아침 슈퍼마켓 가는 익숙한 길조차 매우 흥미롭다. 그 길 위에는 연령대를 파악할 수 없는 생전 처음 본 패션을 한 다국적의 사람들이 무심하고 온화한 눈빛을 하고 있다.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롭고 온전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포츠담이고 그 곳에 자리잡은 집의 발코니이다. 차 한잔 들고 앉아있으면 새 지저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집 앞 놀이터 아이들의 에너지에 감탄하고 강가를 거니는 노인들의 발걸음을 찬찬히 보게 된다.
두 집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같은 화창한 봄날이어도 빛의 세기가 다르다. 공기의 밀도가 다르고 불어오는 봄바람이 주는 따뜻함의 색도 다르다. 노이쾰른에서는 깨어나게 하는 에너지를 얻는다. 한층 세상과 가까이 연결된 기분이고 익숙하지 않은 장면에 한껏 노출되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 동시에 온 세상의 흥미로운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무렴 가장 흥미로운 콘텐츠는 인간 아닌가. 포츠담은 오롯이 내 공간 안에 들어앉은 느낌이다. 거실은 남향으로 벽 전체가 창문이다. 창밖으로는 하루 종일 햇빛에 윤슬이 반짝이는 강이 가득하다.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책상에 앉아있으면 마치 대형 유리구 안에 들어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공간은 중요하다. 어떤 곳에 있느냐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것의 주제가 달라지고 그 안에서 느끼는 조그만 감정변화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만든다. 노이쾰른에 있으면 경이로운 자연풍경이 그립고 포츠담에 있으면 사람이 그립다. 이 두 공간 중에 어느 한 곳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유에서다. 혹시라도 포기한 그것이 더 중요했을까 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내 가슴을 꽉 메우고 있다. 이게 다 시간이 많아서 생각만 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