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내 가장 자랑스러운 습관

고통스러운 실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뛰었더니 습관이 되었다.

by 조희진

날이 좋으니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가서 뛰게 된다. 매우 천천히 뛰고 오면 얼마 안 뛴 것 같아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익숙함을 몸에 익히는데 5년 정도 걸렸다. 사실 햇살 좋은 봄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직도 겨울 아침은 쉽지 않다. 겨울에는 눈 뜨면, 아니 전날 잠들기 전부터 내일 아침에 뛸까 말까의 갈등은 시작된다.


2020년 봄에 처음 조깅을 시작했다. 한평생 뛸일이 없을 것 같은 내 인생이었는데 말이지. 중학교 때는 오래 달리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중 하나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숫자 800. 100미터, 200미터는 어찌 되었든 싫어도 눈 질끈 감고 뛰면 금방 끝나는데 800미터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기분이었다. 지루하고 힘든 고통스러움이 천천히 오래도록 지속되는 시험이었다. 밧줄에 묶인 일하기 싫은 고집 센 황소를 억지로 끌고 오는 것처럼 나는 내 두 다리를 그렇게 끌고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았다. 늘 반에서 꼴찌의 기록을 세웠다.


이런 내가 어떻게 조깅을 하게 됬느냐. 실연이었다. 실연의 아픔이 깊은 기간 동안 인간은 약간 변한다. 모두가 한 번쯤은 그 기간 동안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나도 기를 쓰고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시간이었다. 3년을 푹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졌다. 서로가 너무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연을 붙여보려고 애쓰고 난 직후였다. 몇 주 동안 밥도 들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은 고통스러운 날들을 버텨내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물리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매일매일 90분짜리 강도 높은 요가 수업도 한 달을 꼬박 다녔다. 아침에 눈뜨면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가 절망적이어서 눈뜨자마자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더랬다.


어쩌면 운도 좋았지. 마침 코로나가 대단스럽게 퍼져나가는 시기였고 사람이 모이는 모든 것을 금지시키는 세상이었다.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사이 2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기이한 분위기일 때 최고의 스포츠는 혼자 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큰 계획이나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닌 실연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자 시작했던 뜀박질이 지금은 가장 소중한 습관이 되었다. 한번 자리 잡은 습관은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고 아침에 뛰기 시작했더니 저녁에는 또 잘 안 뛰어진다. 오전에 뛰는 기회를 놓치면 그날은 그렇게 넘어간다.


되도록 야외에서 뛴다. 몇 주동안 주야장천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피트니스센터의 기구 위에서 뛰긴 하지만 실내 달리기는 영 뛸 맛이 나지 않는다. 매일 뛰는 공원의 같은 길이어도 나무의 색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눈으로 햇빛과 나뭇잎을 좇으며 뛰다 보면 자연이 경이롭다는 것이 와닿는다. 어쩌면 얘네들은 이렇게 한결같을까. 한겨울 얼마나 추웠는데 그걸 어떻게 견뎌내고 또 이렇게 봄 햇살이 비춘다고 꽃을 피워내는 걸까. 그들에 비하면 나는 참으로 나약하고 작은 존재 같아서 내가 어제까지 위경련을 일으키도록 했던 고민들마저 한없이 작아진다. 내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뛰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점점 에너지가 가열되는 동시에 머릿속은 한없이 평화로워지는 오묘한 순간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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