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프'. 뭐든 잘라먹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복스럽게 잘 먹는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깨작깨작까지는 아니어도 어른들을 만족시킬 만큼도 아니다. 그런데 밥 한술을 넘치지 않게 뜨는 내 식습관이 다행히 독일에서 살기에 유리하다. 문화차이야 맘 잡고 세어보자면 하늘의 별보다 많을 독일과 한국인데 그중 으뜸은 식문화다. 식재료, 조리법, 하루에 밥 먹는 횟수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서는 한입에 많이 넣고 적게 넣고는 완전히 반대이다. 아마 유럽 대부분이 비슷할 텐데 양 볼이 가득 차도록 음식을 입에 가득 넣는 것은 엄마한테 등짝 맞을 식탁 위의 매너 없는 행동이다.
영화 한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비우티풀 Biutiful'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주 가난한 빈곤층에 두 명의 어린아이를 둔 아빠로 나온다. 멀건 우유에 싸구려 시리얼로 아침을 먹는 장면이었다. 대여섯 살 정도 된 어린 아들이 시리얼을 한입 가득 넣고 우걱우걱 먹자 아빠가 크게 화를 낸다. '나눠먹으라고!' 소리 지르는 그 장면.
혼자 저녁을 먹으며 배고픔에 나도 모르게 파스타를 크게 돌돌 말아 가득 한입 머금고 생각한다. '한국 같았으면 복스럽단 소리 들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지만 혼자이니 이렇게 먹을 수 있지 식당이나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라면 배가 고파도 모든 음식을 매우 쪼개서 입에 넣었을 것이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이 과정에 유럽사람들은 엄격하다. 소리를 내어 씹어서도 안되고 입안에 음식이 있는데 말을 해서도 안되며 양볼이 가득 찰만큼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도 안된다. 나이프. 한국에는 없는 식기가 유럽에서는 식사용 주 식기로 사용되는 이유가 다 있었다. 뭐든 잘라먹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알타리를 자를 때 앞니를 나이프처럼 사용했다. 초등학생때치아 교정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알타리가 자꾸만 교정장치를 망가뜨려 부지런히 치과에 가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교정 중에는 절대로 치아로 음식을 잘라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포크보다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내 치아의 각도에 맞게 조절한 후 잘라먹고 남은 것은 내 밥공기 위에 살포시 얹어 두는 방식을 배웠다. 유럽에 와서는 젓가락에서 포크로 식기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유럽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나이프가 익숙했고 나는 내 치아가 익숙했던 것이다.
스테이크야 한국인들도 당연스럽게 나이프를 사용해서 자른다. 그런데 아보카도 조각, 파스타에 들어있는 새우, 샐러드의 오이 등과 같은 것들은 어느새 내 치아가 먼저 닿았다. 이 습관은 아직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이런 규율들을 잘 되새기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돌돌 속이 꽉 차게 잘 말린 김밥을 잘라먹는 것은 봐줄 수 없다. 한입에 크게 넣지 않는 것이 습관화된 유럽사람들은 김밥도 자주 썰어먹는다. 그 한 조각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한입에 다 넣냐는 것이다. 김이 터지지 않도록 정성 들여 꾹꾹 눌러가며 기껏 열심히 말아놓았건만 그것을 다 뿔뿔이 해체시키는걸 볼 때마다 안타깝다. '한입에 다 같이 넣어야 맛있다'라고 넌지시 말해주지만 그들에게는 영 불편한 방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