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친구의 엄마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XX의 여자친구'라는 역할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먼저인 독일.

by 조희진

전 연인과 친구로 지내는 것.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 상대방도 괜찮다면. 그렇데 처음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독일에 10년정도 살다보니 머리로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랄까. 독일에 살면서 본 독일 사람들의 전 연인의 가족과의 관계 정리 방식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가끔은 충격적이기도 했다. 전 시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는 지인도 있었고 한 친구는 전 여자친구를 결혼식에 초대해 본인은 신랑예복을 입고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손님으로 참석한 전여자친구와 셋이서 신나게 같이 춤추는 장면도 보았다. 물론 사이가 썩 좋지 않아 다시는 안보는 이들도 있다.


내가 겪은 독일의 전 연인과의 정리 과정을 '만타'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람의 웹툰 작가가 간략하게 잘 풀었더라. 처음 이 웹툰을 보고는 같은 베를린에 사는 한국인 거주자로서 반가웠다. 그녀는 국제 결혼 파혼이라는 쉽지 않은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용감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파혼의 과정을 그려내가며 어쩌면 시어머니가 될 뻔했던 남자친구의 엄마와의 파혼 후의 관계도 소개했다. 전 남자친구의 엄마는 파혼 후 새로 집을 구하고 홀로 새 삶을 다져나가야 하는 과거의 '예비 며느리'에게 친구로서 애정가득 담고 다가왔다. 비록 자신의 아들과 헤어졌지만 그렇다고 본인과의 관계도 정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옆에서 함께 도와주고 가까이 보살피겠다는 마음이었다.


참으로 독일스럽다. 나도 전 남자친구의 엄마와 매우 가깝지는 않아도 애틋함과 애정이 있는 관계였다. 비록 내 연애는 끝났어도 종종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카드를 주고받고 안부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소홀해지긴 했지만 내가 본인의 아들과 헤어진게 아쉽다며 엄마가 아닌 제 3자처럼 얘기하시는 분이었다.


독일은 개인이 중심이 되는 문화권이다. 내가 소속된 단체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먼저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XX의 남자친구'나 'XX의 부모'라기보다는 개인대 개인으로 먼저 시작한다. 유치원의 학부모끼리도 '누구의 엄마'라는 호칭은 없다. 각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게 예의이다.


전 남자친구는 나와 함께 처음으로 그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친절하게 얘기했다.

"네가 우리 엄마를 좋아하면 좋겠지만, 내 부모님이라서 꼭 좋아해야할 이유는 없어" 물론 그의 부모님도 마찬가지.


그 말이 나를 홀가분하게 했다. '며느리'나 '사위'라고 상대방의 부모님의 생일을 반드시 챙겨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본인이 선물과 카드를 보내고 싶으면 보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명절이라고 꼭 부모님댁을 방문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즐거우니 간다라는 태도가 전반적인 독일 사람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자유를 든 우선순위의 맨 꼭대기에 두는 이유에서다. 삶은 본인의 자유의지가 기반이 되어야 하며 외부의 압박이나 감시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군가에게 컨트롤 당하는게 무엇보다도 싫은 사람들.


세상 모든 것에 장단점은 있으니 내가 편하게 독일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대하는것처럼 그도 나의 부모님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절대 섭섭해하지 말것. 내가 편하게 사는 댓가라고 해야겠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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