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언제까지 이곳에 살 수 있을까

독일의 수도이지만 가장 독일답지 않은 곳

by 조희진

베를린에 사는 외국인들은 알 것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다른 도시와는 매우 다르 다는 것을. 독일의 수도이지만 가장 독일답지 않은 곳이라 많은 독일사람들이 살기 꺼려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 베를린의 특징이 대부분 나에게는 장점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마음을 두고 정착할 수 있었다. 베를린이 익숙해질 무렵 다른 도시가 궁금해졌다. 서울에 익숙하고 런던에서 몇 년 잠깐 살았던 기간을 포함해 나는 항상 번잡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늘 인간은 가지지 못한 것에 환상을 두고 욕심을 내는가 보다. 나는 시골의 전원생활을 동경했고 한적한 마을에 정원 있는 집을 꿈꿔왔다.


시골까지는 아니어도 베를린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몇 년 전 하노버에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또 한 번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도시에 떨어졌다. 아주 잘하는 독일어는 아니지만 필수적인 관공서업무 정도는 무사히 볼 수 있는 수준이었고 베를린에서 몇 년 산 경험으로 큰 걱정도 없었다. 어쩌면 하노버에서 영원히 정착할 수도 있으려나? 하는 분홍빛 안정적인 미래상을 그리기도 했었다.


하노버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1분의 추가근무도 없는 회사생활을 깔끔했고 집 주변 커다란 호수와 산책길이 있었다. 매일매일 출근 전에 조깅을 하고 커피를 손수 내려 마시고 요구르트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5시 이전에 마무리되는 퇴근길은 가벼웠고 장을 봐서 간단한 저녁을 해 먹고는 10시쯤 잠드는 일상이었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조금 더 오래 조깅을 하고 오후에는 집을 청소하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1인 직장인 거주자의 표본적인 날들이었다. 단, 친구가 없어서 외식이나 맥주 한잔 하러 갈 일이 매우 드물었고 가끔 혼자 카페에 가는 정도가 운동을 제외한 외출의 전부였다.


2년쯤 지났을까. 하노버가 쉽지 않음이 느껴졌다. 그제야 비로소 주변 지인들이 조심스래 했던 격려의 말들이 떠올랐다. "독일의 다른 도시는 베를린 하고 많이 다를 수도 있어. 사람들은 항상 친절한데 네가 외국인이라는 게 조금 더 느껴질 수도 있어." 하노버와 베를린을 비교했다. 베를린 2년 차에는 집 근처 카페에서 오며 가며 인사를 주고받던 동네 이웃들과 꽤나 친해질 수 있었다. 나이도 당시 나와 비슷한 30대 또래들이 많았고 두어 번 마주쳤을 때에는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서슴지 않게 대화가 시작되었었다.


하노버에서는 큰 호수에서 타는 조정 운동을 했었다. 나와 인도에서 온 친구를 빼고는 모두 독일인으로 구성된 로컬 스포츠그룹이었다. 우리는 서로 적어도 일주일에 두어 번 이상 만났고 두 시간정도 같이 배를 탔다. 늘 친절하게 인사했지만 그 이상으로 큰 진전은 없었다. 물론 나의 소극적인 성격도 원인이었겠지만 그들끼리도 운동 이외의 만남은 없는 듯했다. 모두들 배를 정리하자마자 각자 자전거를 타고 뿔뿔이 흩어졌다.


2년째 되는 여름, 자주 같은 배를 타던 크리스토프가 내게 질문했다. "너는 무슨 일을 해?"


서로의 직업을 공유하기까지 걸린 시간 2년. 너무 사적인 것을 묻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배려심일 수도 있다. 이방인인 나에게 늘 친절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지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그들의 방식이 매우 독일적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둥지가 포근하고 단단한 대신 낯선 것에 대한 허락은 쉽지 않다. 친절한 관심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본인의 삶과 연결될 일은 없는 흥미로운 외부인인 것이다.


지난 며칠 남부 독일의 작은 도시에 지내면서 또 한 번 생각했다. 베를린이 아닌 다른 독일의 도시에 살 수 있을까? 언제까지 베를린에 살게 될까? 내가 노인이 되어도 이 날 것 같은 도시가 좋을까? 아직 먼 날 같으면서도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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