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백 하나〉

by 김희진

김희진
지난가을, 동생의 통증에서 우리 가족의 시간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옆구리가 아프다던 그는 병원을 찾았고, 보호자와 함께 오라는 말을 들은 날 나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진료실은 유난히 밝았다.
위암 4기, 간과 췌장으로 전이.
수술은 어렵고 항암 치료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우리 가족의 시간을 단번에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칠 남매였다.
이제 남은 이름은 셋뿐이다. 하나씩 줄어든 자리만큼 집 안의 공기도 가벼워졌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렇게 소리 없이 비어 갔다.
항암 주사 다섯 병을 꽂고 일주일을 버틴 동생은 말했다.
“괜찮다.”
핏기 없는 얼굴로 건넨 그 한마디가 오히려 나를 울렸다.
며칠 뒤 그는 조용히 속내를 꺼냈다.
“누나, 앞으로 5년만 더 살고 싶어.”
많지도 않다. 다섯 해.
그 시간 속에는 계절 몇 번이 오가고 꽃이 피고 지는 일뿐일 텐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을 잡은 채 속으로만 되뇌었다. 아직은 안 된다고.
항암을 시작하면 잘 먹어야 한다기에 호박죽을 끓였다. 냄비를 천천히 저으며 마음도 함께 달랬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낙지볶음이 먹고 싶다고 했다. 매운 것도, 술도 생각난다고 했다. 먹고 싶다는 말이 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 가슴이 저렸다.
동생 집은 멀다. 그래도 나는 전철을 탄다.
“왜 또 왔어.”
그는 말하지만,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전철만 타면 오는데 뭐.”
몸은 조금 힘들어도 마음은 늘 그쪽으로 기운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발걸음이다.
동생은 삼십 년을 아내 없이 아들을 키웠다. 그 세월의 무게를 나는 온전히 알지 못했다. 술을 탓했던 말들이 이제 와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더 자주 간다. 남은 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아픈 몸으로도 그는 늘 종이백을 찾는다.
사과 몇 알과 반찬 통 하나를 담아 내 손에 쥐여 준다.
“나중에 네가 먹어.”
말려도 소용없다.
오늘도 나는 종이백 하나를 들고 돌아온다.
가벼운 봉지 속에,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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