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미술관에서의 감동
여행지에 오면 박물관에 들러야 한다. 박물관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공부도 되고, 혼자 다니는 뻘쭘함도 없다. 시내를 돌아다니기 힘든 더운 여름철에는 더더욱 좋다.
찾아보니 청주시에는 두 개의 박물관이 있었다. 먼저 고인쇄박물관을 찾았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가 발견된 흥덕사지 터 옆에 박물관을 지었다. 근현대인쇄전시관, 금속활자 전수교육관, 세계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등 인근에는 '직지'와 관련된 여러 건물이 있었다. 최초의 금속활자를 알리려는 청주시의 노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고인쇄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없었고, 모조품이나 영상이 전부였다. '직지' 홍보관 정도의 수준이었다.
고인쇄박물관에 대한 실망으로 청주박물관에 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하지만 계획이 그러했으므로 찾은 청주박물관은 전시 수준이 달랐다.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라는 박물관 건물 자체가 특이했다. 김수근은 부여, 진주 박물관도 설계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상설전시는 금속을 주제로 네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있었다. 박물관 전시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뻔한 기획이 되기 쉬운데, 청주박물관의 전시는 달랐다.
1, 2실에는 '고고, 금속으로 변화된 삶', 3실에는 '미술, 금속으로 꽃 피운 문화', 4실에는 '금관, 금속에 깃든 품격'으로 전시했다. 1, 2실의 밝은 조명과 달리 3, 4실에는 어두운 조명으로 고려~조선시대의 금속공예와 불교 미술, 금관 등의 유물 하나하나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박물관이지만 국보급 보물들도 다수 볼 수 있었다. 벽면의 토기들은 인테리어 소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슷한 토기나 그릇, 향로, 주전자들을 시대 구분 없이 전시하면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했는지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시 중간중간 복도의 휴게공간에서는 통창을 통해 야외에 전시된 문화재를 액자처럼 감상할 수도 있었다. 느릿느릿 박물관을 돌며 눈요기하기에 충분했다.
청주에 오면 또 들러야 할 곳이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주변에 충북공예전시관, 동부창고가 함께 있고 각종 편의시설도 있다. 이곳에서만 온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내가 온 날은 9월에 열리는 청주공예비엔날레 준비로 공예전시관은 휴관이었다. 매년 열리는 비엔날레 기간에 청주에 다시 놀러 오면 좋을 듯했다.
박물관의 상설전시는 무료다.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미술작품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를 개방하여 보여주고 있다.
1층은 개방형 수장고인데, 실제로 전시실은 창고 같은 느낌이 있다. 2층에는 창고 안을 유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끔 전시되어 있었다. 3층에는 미술은행 소장 작품을 기획 전시하고 있었다. 4층까지는 무료전시다.
아카이브 한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교과서와 70년대 미술교과서를 전시해두고 있었는데, 추억이 돋아 미술품보다 열심히 펼쳐보기도 했다.
5층에는 수채화를 주제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알 만한 작가는 이중섭이나 장욱진 화가가 전부였다. 우리나라 수채화의 역사는 정말 짧아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것을 배울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