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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eejong Jul 26. 2018

그래서, 공유주방이 뭔데? - 02

주방이 없는데, 음식을 어떻게 만들지?

뭔가에 홀린 듯이, 아니 누군가에 속은 듯이, 그렇게 나는 이직을 해버렸고 공유주방은 나의 직업이 되었다. 사업계획서 검토를 도와주면서, 그리고 새 직장 출근 직전에 약간의 자료 조사를 통해 알아본 공유주방 시장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 한국의 그 누구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리고 어쩌면 두렵게도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을 수 있는?


모든 일이 그렇듯, 자료 조사를 해야했다. 그런데, 짐작은 했지만, 국내에서 발간 된 자료가 없다. 구글링을 해봐도 우리 회사에서 낸 보도자료가 전부였다. 대표님(선배에서 대표님으로 호칭이 변경 되었다.)에게 물어봤더니, 공유주방 자체가 한국에는 아예 없고(당연히 우리가 처음 하는 거니까) 미국에 많이 있으니, 그쪽 자료는 꽤 있을 것이라 대답해 줬다. 괜찮은 자료 찾으면 번역해서 브리핑을 해달라고 했다. 이 인간이...


그래서 구글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공유주방', '키친인큐베이터'에서 'shared kitchen', 'kitchen incubator'로. 이제 좀 자료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영어로. 나는 대학에서 유교철학을 전공(공자님, 맹자님 그거 맞다.)했고, ROTC를 하느라 어학연수의 기회는 없었으며, 탁월한 언어적 재능도 아쉽지만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자료를 모아가면서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고, 그 지난한 과정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공유주방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자료.


초기에 가장 도움이 된 자료는 U.S. Kitchen Incubators 라는 리포트였다. '도대체 이직한 회사는 뭘 하는 회사니?'라는 부모님의 우려섞인 질문, '그래서 당신네 회사는 한 마디로 뭐하는 회사인가요?'라는 투자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이거 정말 할 만한 사업이 맞나?'라는 나 스스로의 자조섞인 질문에, 정말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의 답변은 가능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조금 설명을 하자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공유주방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지표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첫 번째 지표는 '공유주방의 수'이다. 2013년 130개였던 공유주방이 2016년 200개로 약 50% 급성장했으며, 전체의 2/3 이상이 2010년 이후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주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무맹랑한 사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매출액'인데, 2013년과 비교하여 매출액이 증가하였다고 답한 비율은 82%로 동일(12%) 혹은 감소(6%) 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을 갖고 있었으며, 영업이익의 측면에서도 Making Money(39%), Breaking Even(37%), Losing Money(25%)로 양호한 수준의 운영지표를 보여줬다. 잘하면 돈을 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멤버 수'인데, 지난 3년간 멤버 수가 증가했다는 주방이 84%로 나타났으며, 이 또한 동일(12%), 감소(4%) 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어쩌면 대표 말처럼 F&B 생태계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오글 #진지 #거창 #우버)했다.


미국 워싱턴의 UNION KITCHEN,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 소유의) 주방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생긴 곳(직찍)이 미국에 200여 개가 있고, 여기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생산하고 판매한다. 공유주방을 아주 쉽게 말하면 co-working space for food businesses. 그러니까 위워크나 패스트파이브 같은 임대형 사무공간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그중에서도 F&B 비즈니스에 아주 특화되어 있는, 그런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경우, 멤버들은 하나의 작은 F&B 기업으로서, 저 공간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주로 파머스마켓(지역 농수산물 특화시장, 우리나라로 치면 그냥 시장), 커뮤니티 이벤트(사적인 모임 케이터링), 소규모 그로서리(작은 식료품/반찬 가게), 온라인, 기업 케이터링 등에 납품하며 영업을 하고 있다.


EAT PIZZA가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 LOCAL 이라는 표시가 애향심을 일으킨다.


미국 워싱턴 UNION KITCHEN이라는 공유주방에서 만든 'Andy Brown의 EAT PIZZA'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성공사례다. Andy Brown은 맛있는 피자에 대한 컨셉과 열정!을 갖고 시작했는데, 공유주방에서 약 3개월 동안 사업계획 및 R&D 과정을 거쳐 시제품을 만들었고, 현재는 MD들의 입점 제안을 받아 약 30개가 넘는 스토어에서 냉동피자 부문 1등을 달리면서 절찬리에 판매 중이라고 한다. (최근 만난 UNION KITCHEN 직원의 말로는 전국에 있는 세븐일레븐에 모두 깔렸다고 했다.) 생산량이 많아서 지금은 공유주방에서 다 만들지 못하고, 따로 공장을 차렸단다.(그는 부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부럽다.)


그러니까 공유주방은 F&B 스타트업의 관점에서, 투자 리스크 없이 적은 비용으로 시제품 혹은 일정수량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또,  동시에 인큐베이팅 교육, 브랜드 마케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멘토링, 네트워킹 등을 통해 사업을 스케일업 할 수 있는 여건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며, (본인 소유의) 주방 없이도 음식을 만드는, 그 어려운 일!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 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 회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주방을 빨리 만드는 것!




나 : 대표님, 우리 주방 언제 만들어요?


대표 : 어.. 지금 계획으로는 한 3월 정도?


나 : 지금 1월인데 얼마 안 남았네요. 준비할 게 많을 것 같은데.


선배 : 응 근데 돈이 없어.


나 : 네?




우리회사 대표는 운동신경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 운동신경이 매우 좋다. 다른 것도 좋아야 되는데.


그렇다. 우리 회사는 다른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듯 자본이 없었다.




나 : 그럼 어떻게 해요?


대표 : 투자를 받던가, 대출을 받던가, 파트너사를 구해봐야지.


나 : 아 네..


선배 : 그래서 그런데, IR자료 너가 한 번 써봐라.


나 : !!!




그 때 확신했다. 이래서 나를 데려 왔구나. 아 놔. 속았네. (대표는 학창시절 축구선수였다. 포지션은 공격수, 주특기는 접기. 그러니까 상대방을 참 잘 속인다.)


맥북을 열고 키노트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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