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김영민 교수 북토크에서 J는 행복이란 목표달성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무언가를 목표로 정하는 순간부터 목표에 이르기 전까지 행복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날 이후 J는 2026년의 계획을 다시 열어보았고, 해야 할 일들을 빼곡히 적는 대신, 일상 속에서 가려진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해로 한 칸씩 비워두기로 했다. 손글씨보다 자판이 익숙해져 깊숙이 넣어두었던 국어사전을 다시 꺼내 놓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망부석.
지아비를 그리워하다 끝내 돌이 된 아내.
사전적 의미 너머를 들여다보면 박제상 부인의 망부석은 단지 기다림의 형상이 아니라, 화해할 수 없는 당대의 권력에 맞서 끝내 움직이지 않기로 한 한 여성의 선택이기도 했다.(『한국이란 무엇인가』 48면을 읽으며)
조심.
영한사전에서는 인지하다, 면밀히 바라보다, 보살피다로 옮겨지지만 국어사전에서 이 단어는 한자를 요구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잡을 조(操)’와 ‘마음 심(心)’이 만난 이 단어를 두고, 손으로 새를 다루듯 너무 세게 쥐어도, 너무 느슨해도 안 되는 그 미묘한 감각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살짝만 빗나가도 날아가버리는 것들에 대해.
어느새 방구석 철학자가 된 듯한 J는 일상을 조금 더 천천히 훑어보기로 했다. 무심히 지나치던 단어를 붙잡아 보고, 익숙한 문장을 다시 읽어보고, 영어 문장 하나를 옮기면서도 그 안에 숨은 중심을 헤아려보는 일. 그렇게 국어와 영어 사이를 오가며 퇴고를 돕는 AI와 나란히 앉아 글들을 더듬다 보면, 삶의 지평은 조금씩 넓어지고 그 안에 서 있는 자신은 전보다 단단해져 있지 않을까, J는 그런 풍경을 조용히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