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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Jun 29. 2017

속이 부글부글

부모님과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시선 끝에 맞은편에 앉은 아빠의 젓가락이 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듬뿍 뜬 김치, 가지무침, 콩나물무침이 아빠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저렇게 드시면 짤 텐데……. 심장에 스텐트를 네 개나 넣은 분이 저렇게 짜게 드시면 쓰나. 몸이 아프면 알아서 전보다 싱겁게 먹도록 노력해야지. 왜 자기 몸 관리를 스스로 안 하는 걸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아빠의 젓가락질을 이제 그만 제지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옆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밥이랑 같이 좀 먹지. 밥 한 번에 반찬을 몇 번씩 먹는 거야.”

엄마, 나이스. 짝짝짝. 훌륭한 타이밍이었어요. 속이 다 후련하네.

“아니에요. 이거 안 짜요. 반찬이 싱거워서 괜찮아요.”

아빠의 대답이 대뜸 명치를 치고 들어온다. 다시 목구멍이 답답해지고 이전보다 더욱 맹렬한 기세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아빠, 반찬 안 싱겁거든요. 요즘 엄마 반찬 간이 점점 세지고 있는데요. 미각을 잃으셨나 봐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식탁 위를 맴돈다.

“밥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한 바퀴 돌고 옵시다.”

식사 후, 엄마가 소파에 앉은 아빠에게 다가가 말한다. 아빠는 소파에 불량한 자세로 앉아 텔레비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볼록 나온 배를 퉁퉁 두드린다.

“나는요, 운동하면 안 돼요. 더 아파요.”

아빠가 배를 두드리던 손을 들어 올리고는 엄마를 향해 설레설레 흔든다.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나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장착하고 다시 아빠를 쏘아본다. 저건 또 무슨 논리지? 아빠, 엄마가 동네를 뛰자는 것도 아니고, 경보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두세 시간씩 걷자는 것도 아니고 살살 걸으며 소화시키고 오자는 거잖아요. 택시 운전하느라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으니 아빠 건강 나빠질까 봐, 아빠 생각해서 걷자는 건데……. 산책 안 나가면 아빠는 그 자세 그대로 앉아서 텔레비전만 보다가 이불 속에 쏙 들어갈 거고, 그럼 주무시다 일어나서 속 불편하다고, 역류성 식도염 생겼다고 위장약 드실 거잖아요!

꺼져가던 불씨가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다시 활활 타오른다. 불씨 위에 걸어놓은 속이, 식어가던 속이 또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몇 번 더 아빠를 설득하던 엄마는 아빠가 요지부동 움직일 줄 모르자 항복을 선언한다.

“그렇게 앉으면 허리 더 안 좋아져. 똑바로 앉아야 안 아프지.”

직업병인지, 연세 때문인지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다는 아빠가 소파에 누운 듯 앉은 듯 몸을 부리고 있자 엄마가 지적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빠는 머리를 소파 등에 대고, 엉덩이는 소파 의자 끝에 걸친 채 몸을 일자로 쭉 펴고 있다. 아빠, 누가 보면 루지(luge) 선수인 줄 알겠어요. 동계올림픽 나가자고 할 자세라고요. 옆에서 보면 삼각형 빗변의 길이를 구할 수도 있겠네요. 나는 아빠 옆에 앉아 속으로 구시렁거린다.

“아니에요, 난 이게 편해요.”

아빠는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는 듯 다시 배를 퉁퉁 두드리며 말한다. 에휴, 아빠! 그러고는 또 엉치 아프다고, 다리 저리다고 끙끙대며, 파스를 여기 붙여라 저기 붙여라 하실 거잖아요. 병원에 가자고 하면 의사는 믿을 게 못 된다, 돈이 아깝다 할 거고요. 이것도 저것도 안 하고 엄마랑 내 앞에서만 아프다고 하소연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요오오오!

나도 이제 항복이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차라리 안 보고 안 듣고 말자. 나는 소파 끄트머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물을 한 잔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바람구멍을 막고 물을 들이부었더니 뜨겁게 달아오르던 불길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올해 2월, 아빠는 심장에 네 번째 스텐트를 넣었다. 심장 혈관이 좁아지는 심근경색이 찾아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천천히 하나, 둘, 셋, 네 개의 스텐트를 몸에 심은 것이다. 의사는 아빠의 피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찐득찐득하다고 했다. 그 찐득찐득한 피가 뭉쳐서 아빠의 심장을 공격했다.

이번에도 전조 증상이 있었다. 1월부터 자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통증이 세지는 않았지만 찾아오는 주기가 너무 짧았다. 병원에 안 가겠다, 지금 가도 병원에서 해줄 게 없다, 고집 부리던 아빠를 설득해 병원에 갔다. 심전도, 피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네. 근데 왜 이렇게 자주 아프지? 잘 지켜보다 정기검진 하는 4월에 혈관조영 검사를 받아보자.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해요. 점심은 뭐 먹을까? 장에서 뻥튀기나 사갑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엄마, 아빠와 함께 타달타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새벽, 급하게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 급하게 옷을 주워 입고, 괴로워하는 아빠를 모시고 택시를 탔다. 구급차를 부르겠다는 우리를 극구 말리던 아빠는 택시 뒷자리에 앉아 신음을 흘렸다. 택시는 차가 없는 새벽길을 막힘없이 달렸다. 어쩌다 신호에 걸리기라도 하면 아빠가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아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1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몇 십 분처럼 느껴져 발을 동동 굴렀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를 두고 접수처에서 서류를 작성했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적은 접수 서류를 수납처에 내는데 그곳에 서 있던 직원이 아빠를 흘끔 보고는 “배 아파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심장이요, 심근경색이에요.” 엄마가 낮고 빠르게 대답했다. 니 눈에는 이게 배 아픈 걸로 보이냐? 지금 서류 작성하고 접수하는 게 중요해?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환자가 왔는데, 절차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초조함과 불안, 걱정, 안타까움, 속상함 등이 뭉쳐서 애먼 사람에 대한 분노로 솟아올랐다.

응급실에는 환자 외에 보호자가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급히 응급실로 들어가고, 나는 터덜터덜 응급실 옆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서너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맨 뒷줄에 몸을 누인 채 쪽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구석 의자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눈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니 파랗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파란 배경 위로 털모자를 눌러 쓰고 추리닝 바지에 두꺼운 겨울 점퍼를 걸친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이번에는 아빠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무얼 어떻게 해야 하지? 무얼 준비해야 하나? 앞으로 엄마랑 둘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등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노를 저으며 이리저리 떠다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는 이번 삶이 만족스러웠을까? 즐거웠을까?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웃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볼까? 피곤하고 힘든 삶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다짐했다. 아빠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나에게 아빠와 함께할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 남은 시간 동안 아빠가 원하는 대로 아빠가 가장 행복한 형태의 삶을 사실 수 있도록 옆에서 힘껏 도와야겠다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드시고 싶은 것, 하시고 싶은 것 참지 않고 하실 수 있도록 간섭하지 말아야겠다고.

싱겁게 먹어라, 운동해라, 되도록 라면, 과자는 먹지 마라, 바로 앉아라, 어서 자라……. 다 아빠의 건강을 위한 거라고, 아빠를 사랑하니까 더 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하는 잔소리라고 합리화했지만 그건 어쩌면 내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와 오래오래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아빠가, 아빠라는 한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내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내가 슬프기 싫다는 마음, 우리 옆에 오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곧 나의 욕심이 먼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포기일까?’라는 의심이 솟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받아들임’이었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아빠와의 이별을 받아들임, 아빠를 한 인간으로 받아들임, 내 욕심을 깨닫고 받아들임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셔도 후회하지 않게, 조금 덜 후회하게 계신 동안 재밌게 지내야지, 아빠가 조금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더 괴롭히고(?), 더 많이 애정을 표현해야지, 마음먹었다.


시술을 무사히 마친 아빠가 퇴원하시고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잔소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 아빠가 편하고 행복하면 됐다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뭐라 하지는 못하고 눈빛으로 레이저만 실컷 쏘다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사춘기가 지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 인간은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나만 해도 드럽게 말 안 듣잖아.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내 편의대로 해석해버리잖아. 이런 생각을 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잠재운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솟아올랐던, 아빠를 살려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일상의 짜증이 덧칠해지면서 희미해지고 말았다. 아빠의 잘못을 지적하고, 아빠가 이렇게 저렇게 하기를 바라고, 내 기분 상태에 따라 아빠에게 화를 냈다가 내가 필요할 때면 다가가 간살을 떨었다.

인간이란 이런 거야.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은 쉽지 않아. 뭔가를 깨달았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그러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해.


가족이란 어쩌면 꺼내도 꺼내도 끊임없이 ‘후회’가 솟아나는, 후회의 화수분인지도 모르겠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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