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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Oct 09. 2017

독립을 꿈꾸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삑’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 밖으로 나왔다. 날숨에서 알코올 향이 퍼졌다. 평소보다 느린 발걸음. 나와 함께 막차에서 내린 두세 사람이 나를 앞질러 저만치 멀어져 갔다. 그래, 지금은 늦은 밤. 저렇게 걸음을 빨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왕 늦은 거 나는 천천히 갈 테다.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고, 계단에서 넘어지면 안 되니까 조심조심 걸어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때 대각선 맞은편 어두워진 상가 건물 앞을 왔다 갔다 하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엄마다. 엄마는 핸드폰을 한 번 보고는 내가 서 있는 횡단보도 쪽을 바라봤다. 저 여기 있어요. 번쩍 손을 들고 흔들었다. 그래, 엄마도 봤어. 엄마가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일찍 일찍 다니지. 지금이 몇 시야.”

“어두운데 뭐 하러 나왔어요. 그냥 집에 계시지.”

“어두우니까 나왔지. 나는 다 늙어서 괜찮지만 너는 젊은 아가씨라 위험해.”

“늦게 오면 먼저 주무셔요.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니가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자. 난 못 해.”

엄마의 팔을 잡은 손에 꼬옥 힘을 주었다. 그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엄마를 보니 반갑고, 안심되고, 든든하고, 고맙고, 따뜻하고, 좋은데 딱 그만큼 숨이 막혔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밤이었고, 막 스물한 살이 된 나는 작은 초등학교 건물 한쪽 귀퉁이에서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오가지 않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고, 노래하지 않고, 뛰어놀지 않고,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이 초등학교는 숙소로 개조되어 풍물 전수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전국의 풍물패가 일주일씩 전수관에 머물다 갔다. 이제 이곳에서는 쇠가 뛰어놀고, 징이 울고, 북이 춤추고, 장구가 노래하고, 수많은 젊음이 웃고 울었다.

나는 학교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민요 가락, 혈기왕성한 젊음이 토해내는 비명에 가까운 웃음소리를 들으며 핸드폰을 누르고 있었다. 초조했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 저 안에 녹아들고 싶었다. 함께 민요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마음껏 큰 소리로 떠들고 싶었다. 건물 앞 운동장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아니, 수많은 사람의 발에 밟혀 단단하게 굳은, 얼음에 가까워진 눈이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눈동자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뚜르르. 신호가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다.

“여보세요. 엄마, 저예요.”

“너 거기 내려간 지 며칠째니?”

엄마는 화가 나 있었다. 나에게 화를 내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화를 쏟아냈다. 왜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당황해서 난감하게 얽힌 말을 어물어물 흘려보냈다.

“네? 오늘…, 2일째인가…, 3일째인가?”

“근데 어떻게 집에 전화 한 통을 안 해?”

“전수관에서 핸드폰 쓰지 말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잘 도착했으면 도착했다, 별일 없으면 별일 없다 연락을 해야지 어떻게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하니.”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눈처럼 얼음처럼 차갑고 무거운 침묵 속으로 엄마의 흐느낌 소리가 섞여 들었다.

“니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바보처럼 멍하니 서 있던 내 머릿속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연락이 안 된 그 며칠 동안 엄마는 남은 자식마저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끊임없이 나쁜 상상을 되풀이하며 지옥을 걷고 있었겠구나. 오빠가 떠난 지 겨우 세 달 남짓, 아직 생생하게 피 흘리고 있는 그 상처가 나 때문에 더욱 애달프게 울부짖었겠구나. 매여 있지 않은 들소처럼 이곳저곳을 오고 가던 방임의 세상은 이제 끝이 났구나. 그때 처음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살던 세상이 달라졌음을. 몸을 뒤집고, 옷을 갈아입고, 색을 바꿔버렸음을.

그리고 나는 흐느꼈다. 전화기를 붙들고 엄마와 함께. 엄마한테 미안해서, 오빠가 미워서, 변해버린 세상이 너무 낯설어서.

그날 그 초등학교 건물 밖 귀퉁이에서 나는 어떤 문을 하나 닫았다. 차가운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다 놓아버렸다. 문고리를 돌려 활짝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가지 못했다. 그 후 하나 둘 주변 사람들이 자기 앞에 놓인 문을 열고, 마땅히 통과해야 할 그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때에도 나는 닫힌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모두 참 당당하고 멋있어 보였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를 끝없이 생각만 하는 나,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나, 그런 나는 그렇게 모자라 보일 수가 없었다.

“너까지 잘못되면 그땐 엄만 못 살아.”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실감, 누군가의 목숨이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다는 확실한 무게감이 무릎을 꺾고 나를 바닥에 주저앉혔다. 하지만 사실 나를 괴롭히는 악당은 따로 있었다. 나의 민낯. 겹겹이 덮어두었던 진실. 나에게 지워진 짐을 핑계 삼아 용기 없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고 스스로 주저앉은,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은 비겁함. 내 안위를 인질 삼고 엄마의 사랑을 필요에 따라 이용한 교활함. 엄마가 당신의 목숨을 인질 삼아 나를 원하는 모습으로 다듬어가려 했듯이, 두 번 다시 그런 아픔은 겪기 싫다 발버둥치는 당신의 마음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듯이, 나 역시 그 마음을 이용하고, 내 마음을 앞세웠다.

목줄에 대해 생각했다. 내 목엔 목줄이 걸려 있다. 언제부터 목줄이 있었는지, 누가 걸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꽤 오래전부터 걸려 있었을 것이다. 내가 걸었을 수도 있고, 부모님 혹은 또 다른 누군가가 걸었을 수도 있다. 사랑, 두려움, 미움, 질투, 열등감, 편견, 고집, 욕망, 집착…. 나를 뒤흔드는 다양한 감정이 목줄 안에 담겨 있다.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 굵기, 길이의 목줄을 감고 있다. 중요한 건 그 목줄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 있느냐다. 나를 뒤흔들 권리를,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 권리를 누구한테 주었는가? 내 목에 걸린 목줄을 내가 단단히 쥐고 있는가?

어느 순간 나는 내 목줄을 내가 쥐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엄마 손에, 아빠 손에 목줄을 내어주고선 끌려가지 않으려 주저앉아 버티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끌고 가라 내어주고선, 뒤흔들라 내어주고선 끌려가지 않으려 흔들리지 않으려 버티는 모순.

목줄을 가져온다고 당장 세상이, 내가 변하진 않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에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걸음을 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스물한 살 때 닫힌 그 문 앞에서도 떠나야 한다. 자꾸 닫힌 문 앞을 서성이거나 그 문을 돌아보지 않도록. 천천히 굳세게 걸어 또 다른 문을, 변해버린 세상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문을 찾고, 그 문으로 걸어 나가야지.

     

엄마는 전사가 되었다. 아빠와 나를 지키는 전사. 우리가 해를 입지 않도록, 상처 입지 않도록, 아프지 않도록 방어하고, 살피고, 단속하느라 매일매일이 종종걸음이다. 그런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엄마도 원해서 전사가 된 건 아닐 텐데’, ‘엄마도 자식을 믿고 지켜봐주는 쿨한 엄마가 되고 싶었을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저리다. 내가 품 안에서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지금이 이 아이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 아닐까 하는 불안, 이런 내 마음이 이 아이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아파하는 모습이 보여 가슴이 저리다. 이런 엄마를 지켜주는 전사는 누굴까, 아빠와 나는 이렇게까지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데 싶어 가슴이 저리다.

엄마가 나의 전사가 아닌 친구가 될 수 있기를, 그날이 언젠가는 찾아오기를, 늘 나쁜 딸일 수밖에 없는 나는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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