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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Mar 16. 2017

농담

“리틀턴의 모든 엄마들이 아이가 안전하기를 기도하고 있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남을 더 해치기 전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했어요.”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누군가 귀에 대고 “왁!” 큰 소리를 지른 것처럼 머릿속에서, 가슴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았을 때 마주친 문장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 자식이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어떤 걸까. 굳이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마음의 윤곽이 어렴풋이 만져졌다.

내가 열아홉 살이던 1999년에 지구 반대편에선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고등학생 두 명이 총기로 무장하고 학교에 들어가 친구(두 아이에겐 친구가 아니라 해치워야 할 적이었겠지만)들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이름하여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이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글이다. 책 속에서 그녀는 고백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바랐다고. 아들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지 몰랐노라고. 엄마라면 자식에 대해 속속들이 알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은 아들이 보낸 ‘사인’을 놓쳤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 책을 읽고 몇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두렵다’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가 되는 걸 막지 못했던 한 엄마의 고백은 아이를 둔 다른 엄마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홀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아이를 둔 ‘엄마’였다. 자식의 위치에서 이제 막 엄마의 위치로 이동한 사람, 자식의 위치와 엄마의 위치를 오가야 하는 사람, 엄마의 위치가 삶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사람. 반면 나는 아직 자식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사람, 이곳에서 하나의 역할만 하면 되는 사람, ‘나’라는 존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으리라. 다른 엄마들이 책의 화자인 엄마 수의 입장에 서 있을 때 나는 “이번 생만 끝나면 어디로 가든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던 딜런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생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뚜벅뚜벅 딜런의 옆을 따라 걸었다.


교과서와 노트, 문제집이 가득 든 가방을 등에 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발걸음이 있다. 시선은 서너 발자국 앞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땀방울이 이마와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가끔 멈춰 서 어깨를 파고드는 가방을 고쳐 맬 뿐 그렇게 학교에서 시작한 걸음은 50분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다.

천형을 받듯 무거운 가방을 매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걷는 소녀. 열아홉 살,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그해의 내 모습을, 어쩌면 어두운 터널 같던 10대 시절의 내 모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내라고 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고3 올라가던 그해에 우리 집은 아파트를 팔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에 세를 얻어 이사했다. 절벽 끝에 서서 버티고 버티다 이렇게 밀리다가는 우리 모두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리라는 위기감에 자리를 바꿔 선 터였다. 덕분에 나는 걸어서 다니던 학교를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지만, 이런 불편함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가족들은 몰랐으리라. 내 마음은 절벽 끝에 선 게 아니라 낭떠러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걸. 손바닥에 꽉 힘을 준 채 버티고 있었다는 걸. 그러니 몸이 어디로 자리를 옮긴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답답했다. 경제 사정은 안 좋았고, 우리 가족을 떠받치던 두꺼운 얼음 바닥은 어느새 녹아 살얼음판이 되어 있었다. 물속에 빠지지 않도록, 침몰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하나의 발걸음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누군가 잘못된 걸음을 내딛으려 하면 벼락같은 질책이 떨어졌고, 안전한 길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보니 누구 하나 웃지 않았으며, 얼굴엔 늘 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딜런이 친구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있을 때, 그 비극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을 때, 나는 일기장에 분노의 총질을 해대며 구체적인 대상을 또는 누군지 모를 대상을 살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그냥 손을 놔버릴까? 내가 굳이 이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저기 꼼꼼히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손을 놓으면? 적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겠지. 아니면 떠날까? 산속 조용한 암자 같은 곳에 들어가면 그곳에 계신 스승들이 혹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신이 낭떠러지에 매달린 내 영혼을 끌어올려 주지 않을까? 열아홉 살의 나는 그렇게 물 위와 물 밑의 경계에서, 땅과 허공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수 클리볼드는 책의 끝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뇌에 이상이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아무도 다친 무릎을 의지와 용기로 낫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 나는 뇌에 이상이 있었던 거구나.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다친 뇌가 만들어놓은 길이 나를 경계에서 서성이게 했구나. 그리고 이건 의지와 용기가 아니라 꿰매고, 소독하고, 약을 발라 치료해야 하는 문제였구나. 깨달았다.

나에겐 나를 해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 방법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지라도 일단 일이 생기면 생각은 곧장 날카로운 칼을 빼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회사 일을 잘못 처리하면 내가 멍청해서, 모자라서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고, 다른 사람이 실수한 일에서도 내 잘못을 찾아내려 애썼으며, 게으르고 치열하지 않고 야물지 않은 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지를지 몰라 늘 전전긍긍했다.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소 마냥 회사로 향할 때는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면 좋겠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일은 제자리걸음일 때는 계단에서 굴러 팔이라도 부러지면 좋겠다 생각했다. 누군가가 너무너무 미우면 그 사람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는 나를 먼저 죽였다. 유서를 써놓고 죽으리라, 너 때문에 내가 세상을 버린 거라고, 그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보라고. 칼에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통쾌해했다. 베이고 찢겨 신음하는 나는 보이지 않고 머리를 뜯으며 괴로워하는 상대의 모습만 보였다.

생각도 습관이다. 아무것도 지나지 않은 풀밭을 하나의 생각이 걸어간다. 두 번째 생각이 지나가고, 세 번째 생각이 지나간다. 그렇게 풀이 밟히고, 풀이 사라지고, 길이 나타난다. 한번 길이 생기면 어떤 문제가 앞에 놓일 때마다 그 길로 달려간다. 그리고 비슷한 결과만 생산해낸다.

딜런의 옆을 따라 걸으며 나는 그렇게 나를 발견했다. 누구도 아닌 나 때문에 상처받고 있었던 나를.


그 당시, 낭떠러지를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풀릴 때마다, 경계의 이쪽저쪽을 오갈 때마다 손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경계 안쪽으로 나를 잡아당겨주던 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농담’.

다행히도 열아홉 살 때 나에겐 딜런과 달리 ‘친구’가 있었다. 딜런과 손을 잡고 경계를 넘어버린 에릭과 달리 나의 친구들은 내 손을 잡고 함께 웃어주었다. 낭떠러지 위에 앉아 그 밑에 매달려 있는 내게 농담을 건네고 내가 건네는 농담에 환하게 웃어주었다. 어쩌면 친구들 또한 각자 자신만의 벼랑에 매달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내 옆에 있었든, 위에 있었든 그들과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던 순간만은 내 처지를, 답답함을, 분노를 잊을 수 있었다.

우울했던 내 10대를 견디게 한 힘은 ‘농담’이라는 말을 듣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찰나의 위안에 불과하다고.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이나 마약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그렇게 찰나의 불빛에 의존해 어두운 터널을 건너왔다면 그 또한 괜찮은 일이지 않을까. 그 또한 나에겐 의미 있는 일 혹은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불빛을 한 번 일으킬 때마다 더욱 깊고 진한 어둠을 앞에 부려놓는 술이나 마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에게 농담은 일종의 거리두기였다. 슬픔을 꼭 끌어안은 채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지 않고, 슬픔과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때로는 슬픔을 놀리기도 하고, 장난을 걸기도 하고, 비웃기도 했던 것이다. 책 속에서 수 클리볼드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코미디가 동지애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고의 코미디는 비극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물론 농담만으로 모든 슬픔을 이겨낼 수는 없다. 농담에만 매달리면 마주 봐야 할 문제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면서 내 일이 아닌 척, 괜찮은 척, 다 해결된 척 할 수도 있다. 속은 계속 곪아 가는데 얼굴만 웃고 있다면 곧 벼랑을 붙잡은 손에 힘이 빠지고 말 것이다. 주의사항도 있다. 상대를 공격하고 끌어내림으로써 공격 대상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과 웃음을 공유하는 방식의 농담은 삼가야 한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다. 농담을 가장한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이런 농담은 경계 안으로 날 잡아당기는 친구의 손길을 뿌리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천형을 받듯 무거운 가방을 매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걷는 소녀를 만난다. 가엾게만 여기던 그 소녀를 언제부턴가 응원하고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무거운 가방을 매고 발아래 펼쳐진 길을 따라 묵묵히 걷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길이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도 같다.

농담과 함께 나에게는 ‘걷기’와 ‘글’이라는 동무도 있었다. 걷는 동안은 오로지 내 세상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약 50분 동안 나는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꿈꾸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움직이며 내 안에 고인 어두운 마음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곧 다시 내려앉을 어둠이라 하더라도, 걷는 순간만큼은 입으로 코로 그것을 뱉어낼 수 있었다. 글 역시 두 팔 벌려 내 분노를 받아주었다. 기꺼이 총알받이가 되어주었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내 머리는 진작 뻥, 터져버렸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농담을 하고, 자주 걷고, 글을 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주위를 돌아보니 벼랑 위에 올라 서 있다. 아마 벼랑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한 이렇게 계속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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