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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Jan 23. 2017

어른의 사랑이란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특히 부모님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하는 게 느껴진다. 이제는 만날 때가 됐지, 멀쩡하게 생겨서 왜 연애를 안 하는지 모르겠네(사실 멀쩡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올해 만나야 마흔 전에는 결혼하고 애기도 낳고 살지 않겠니……. 이런 말과 눈빛과 태도가 수시로 여기저기에서 피융피융 날아온다.

그래서 나도 생각이란 걸 해봤다. ‘사랑’에 대해. 그런데 참 곤란하게도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진 것만 같다. 아, 덫에 걸린 기분이다.

나에게 ‘사랑’이란 생각만으로도 몸이 배배 꼬이고,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를 외로 틀게 만드는 무엇이다(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냐!). 상대의 눈을 보며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형태의 인간으로 자라났달까. 그렇다 보니 당연히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서툴다. 서툰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서툼 서열 1, 2위를 다투는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저기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해야 한다 부르짖고, 내 마음속에도 분명 사랑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자리 잡고 있으나(정말!) 그 사랑이란 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그게 사랑이지’라고 하기엔 좀 더 복잡하고 오묘하다는 걸, 하나의 감정이 아닌 우리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여러 감정의 복합체라는 걸, 그래서 ‘이게 사랑이야?’라는 것도 ‘설마 이게 사랑은 아니겠지’ 싶은 것도 실은 모두 다 사랑이라는 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더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


80년대 후반, 그러니까 국민학교(네네, 저는 국민학교에 다닌 사람입니다) 저학년 무렵 나도 사랑이란 걸 했다. 그때의 내 사랑은, 고작 아홉 살이었던 나의 사랑은 굉장히 저돌적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을 몰아붙이는, 나는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떼를 쓰는 어린 사랑이었다. 사랑을 받는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들여다보기엔 아직 미숙한 아이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어린 사랑은 내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당시 내가 사랑을 쏟아 부은 대상은 우리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 ‘짱아’였다. ‘저리 어린 꼬마가 교회 오빠 혹은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하다 비참하게 차였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그때 짱아는 학교까지 오빠와 나를 졸졸 따라오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달려와 꼬리를 흔드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었다. 그래서 오빠와 나는 짱아가 내 개니 니 개니 소유권 전쟁을 벌였고, 짱아에게 사랑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며, 그럼에도 짱아가 맨날 예뻐해 주고 놀아주는 우리보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를, 밥을 준다는 이유로 더 좋아할 땐 깊은 질투심과 상실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니 이 또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그날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학교에 다녀온 나는 책가방을 방 안에 던져두고 곧장 짱아에게 달려갔다. 짱아는 공장(그때 아빠는 알루미늄 새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답니다) 사무실 한편에 엎드려 있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평소와 다르게 짱아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짱아에 대한 애정에 눈이 먼 나는 엎드린 짱아에게 돌진했다. 등에 올라타다시피 앉아서는 짱아 목에 매달려 귀엽다고 얼굴을 부비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평소와 다르게 짱아가 몸을 버둥거리며 나에게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을. 하지만 넘쳐흐르는 애정을 표현하는 데만 골몰해 있던 나는 짱아의 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한동안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왕!” 짱아의 굵직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내 얼굴로 달려드는 짱아의 입이 보이더니, 오른쪽 뺨에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을 들어 볼을 만져봤다.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피를 본 순간 아픔과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우아아아앙!” 나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아빠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려 짱아에게서 멀찍이 떼어놓았고, 그 옆에 있던 엄마는 빗자루를 찾아 들고 짱아를 내쫓았다.

갑자기 공장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우는 나를 달래고, 병원에 가기 위해 서둘러 자동차 열쇠를 찾는 와중에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 아저씨가 말했다.

“그거 흉 안 지려면 개털을 불에 지져서 물린 데 붙여야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가위를 찾아 들고 다시 짱아를 쫓아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붙잡히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도망 다니던 짱아는 결국 엄마 손에 검거되었다. 엄마는 짱아의 털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는 라이터를 켜 털을 지졌다. 아직도 기억난다. 라이터의 줄날 바퀴를 몇 번이나 돌리던 엄마의 손, 뿌옇게 퍼져 나온 연기 속에 희미하게 배어 있던 매캐하고 꼬릿꼬릿한 그 냄새가.

그렇게 개털을 얼굴에 붙이고 병원에 도착했다. 상처를 들여다본 의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개털은 왜 붙이셨어요? 감염 위험이 있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요!”

결국 나는 얼굴을 네 바늘 꿰매고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시 빗자루를 집어 들고 짱아에게 돌진했다. 애 얼굴을 저렇게 만들어놓으면 어떡하느냐고 소리치면서. 깨갱거리는 짱아의 비명을 내가 들었던가, 듣지 못했던가……. 짱아를 정리한 후 엄마는 나에게도 달려왔다. 이젠 니 차례라는 듯, 아픈 개를 그냥 내버려둬야지 그렇게 못살게 굴면 어떡하느냐고, 말 못하는 짐승이 얼마나 괴로웠겠냐고, 짱아가 진짜로 마음먹고 물었으면 네 얼굴은 남아나지 않았을 거라고, 그나마 스쳤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혼을 내셨다.

그렇다. 사실 짱아는 그날 아팠다고 한다. 아침부터 비실비실, 밥도 먹지 않고 그렇게 하염없이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혼자서 고통을 참고,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서 망나니가 한 명 달려와 아픈 몸을 흔들며 들러붙어 있었으니 평화는 깨지고 아픔은 배가 되었으리라.

그래, 나에겐 사랑이었으나 상대에겐 고통이었겠다. 그래, 나는 함께 있고 싶었으나 상대는 홀로 견디고 싶었겠다. 그래, 내 마음이 상대에게 폭력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 결국 사랑의 끝은 파국……(아, 이건 아닌가?).

지금도 오른쪽 광대 부근에 그때의 상처 자국이 남아 있다. 꿰맨 흔적이 비교적 분명하게, 동그란 이빨 자국 두 개가 비교적 희미하게. 이 상처는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겠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내 사랑이 상대에게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결국 사랑이란 자기만족일 뿐일 수 있음을 처음 깨달은 게 바로 그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고 싶은 모습으로 주는 게 아닌, 상대가 받고 싶은 모습으로 주는 게 사랑임을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하여 입안에서 사탕을 이리저리 굴려보듯 머릿속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더니 결국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어쩌면 사랑은 사람마다 다른 모양을 띠는 것은 아닌지. 생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것처럼 그들이 주고 싶은 사랑, 받고 싶은 사랑이 저마다 다른 것은 아닌지. 같은 사랑을 주어도 누군가는 넘친다 불평하고 누군가는 모자란다 불평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이 사람에게는 이런 사랑을, 저 사람에게는 저런 사랑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결국은 상대가 어떤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사람인지 아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건 상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

물론 내 욕망도 무시할 수는 없기에 때로는 내가 주고 싶은 방식으로 마음을 밀어붙이기도 할 것이다. 어제까지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싫어지기도 할 것이다. 상대가 바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더 주기 싫은 심술궂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기도 할 것이다. 이러니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란 어려울 수밖에(인간적으로 변수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어른이 되면 뭐든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려운 일 천지다.

아아, 여전히 덫에 걸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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