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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Jan 11. 2017

안 생겨요

“오다가다 만나고 싶어요?”

진지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그래, 나는 안다, 알고 말았다. 그 목소리에는 ‘진짜 그걸 바라냐, 네가 바란다 하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네!”

잠깐의 침묵 뒤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그냥 소개 받아요.”

“아, 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어쩌다 보니 두 번 사주를 봤고, 공교롭게도 두 곳에서 모두 같은 대답을 들었다. “운명적인 사랑 따윈 기대치 말고 그냥 소개 받아요.”


몇 년 전 여행을 떠났다. 처음이었다. 북아메리카도, 3개월이란 시간도, 혼자라는 것도. 나에게 처음은 늘 두렵고, 두렵고, 두렵고, 설레고, 두려운 것이었다. 경험치가 없으므로 여기저기 떠다니는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마음 또한 정보에 매달려 이리저리 떠다녔다.

‘뭐야, 나 미국에 못 들어가고 쫓겨나는 거 아니겠지, 나 영어 못하는데 입국심사대에서 이상한 거 물어보면 어떡하지, 국적기도 아닌데 어떻게 밥은 먹을 수 있으려나, 환승 게이트는 잘 찾아갈 수 있겠지, 짐이 어디 다른 나라로 가버리는 건 아니겠지…….’

머릿속을 오가는 상상은 계속 암울해져만 갔고, 상상 속에서 나는 한결같이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모름지기 어떠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 올리는 존재이리니, 내 가슴속에서도 두려움을 뚫고 한 가닥 희망이 솟구쳐 올랐다.

‘혼자 여행하는 게 두렵긴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많아지겠지. 영화 같은 데서 보면 혼자 여행하다 비행기나 기차 안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도 하잖아. 경유까지 합하면 하나, 둘, 셋, 넷……, 나에겐 여덟 번의 기회가 있다!’

여행 경로는 이러했다. 한국→(일본)→뉴욕→(미니애폴리스)→밴쿠버→(미니애폴리스)→뉴욕→(일본)→한국. 여행 일정은 이러했다. 뉴욕 이모댁에서 한 달간 체류, 밴쿠버 친구 집에서 한 달간 체류,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한 달간 체류 후 귀국. 좋아, 떠나자!

한국에서 뉴욕으로 가는 동안 조용한 흑인 여성이, 친구들과 조잘조잘 떠드는 백인 여자 어린이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뉴욕에서 밴쿠버로 가는 동안은 뒤에서 어린아이가 울자 영어로 끊임없이 욕을 내뱉던 백인 남자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던 날,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며 나는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구불구불 웨이브가 들어간 갈색 단발머리를 분위기 있게 늘어뜨린 한 청년이 옆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날카로운 콧날에 신비로운 눈빛을 가진 그 청년은 예술가 같은 분위기를 폴폴 풍기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오, 좋아, 좋아. 정말 이런 순간이 오긴 오는군.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

자리에 앉은 나는 책을 꺼내 들었다. 그래, 지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자. 책을 매개로 이게 무슨 책이냐, 어느 나라 말이냐, 어디서 왔느냐, 어디 가느냐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 후후후. 그렇게 몇 분 후……. 나는 격정적으로 머리를 휘두르며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자네, 상모돌리기라고 아나?) 헤어짐이 아쉬워 전날 늦게까지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졌었다는 사실을, 매우 이른 오전 비행기였다는 사실을, 나는 어디든 탈것에만 앉으면 쉬이 잠들고 마는 체질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경유지인 미니애폴리스 공항에 내린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런 어리석은 계집애야’를 외쳐댔다.(자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들어봤나?)

네가 깨어 있었다고 해서 별수 있었겠니라고 하신다면 네, 물론입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굴러 들어온 복을 만져보기는커녕 발로 뻥 차버리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그 후에도 나에겐 세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었고, 다시 뉴욕에 돌아온 뒤로는 혼자 맨해튼을 쏘다니며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락거리고, 심지어 사촌언니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에도 다녀왔으나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일어나는 불꽃 튀는 로맨스 따위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야, 그런 건 개나 물어가라지, 역시 하늘은 날 버렸어, 흥, 쳇, 궁시렁궁시렁.

 

“그냥 소개 받아요.”

이 말이 내 첫 북아메리카 여행을, 간질간질한 희망을 펑펑 쏘아 올렸던 그 여행을 소환했다. 이런 것도 사주에 나오나 봐요, 신기해하면서. 서울이든 미국이든 캐나다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딜 싸돌아다녀도 난 안 생길 운명이었나 봐요, 절망하면서.

만약 신이 있고,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 신은 인간을 보며 얼마나 비웃을까. 아니 나를 보며 얼마나 비웃었을까. 쟤 좀 봐, 또 헛물 사발로 들이키고 있어. 만약 신이 있고,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 신은 인간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할까. 아니 나를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쟤 좀 봐, 안 되는 걸 알면서 또 저러고 있네. 어쩌면 질려 할 수도 있겠다. 안 되는 걸 알면 좀 그만하라고! 소리칠지도 모르겠다.

만약 신이 없고,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이렇게 분석해볼 수도 있겠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낯을 가리는 내가 낯선 땅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또 뭐 얼마나 마음을 열었겠나. 머릿속으로는 온갖 상상을 하면서도 막상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이건 또 뭐냐 움츠러들었겠지. 평소에도 ‘나한테 말 걸지 마, 나한테 시비 걸지 마,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 기운을 뿜어내며 무표정이란 보호막을 걸친 채 돌아다니던 내가 낯선 땅에서도 ‘나한테 말 걸지 마, 나 영어 몰라, 나한테 시비 걸지 마, 나 돈 없어,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라는 얼굴을 한 채 돌아다녔겠지.

자, 그렇다면 이제 나는 두 분의 말대로 “그냥 소개를 받아”야 할까? 연애를 하려면 사주에, 운명에 굴복해야 하는가! 그런데 어쩌나. 소개팅은 싫다. 목적을 가진 만남이 싫고, 이 사람을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빨리 결정해야 하는 것도 싫고,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는 것도 싫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소개팅이 싫으면 동호회에 나가라고. 으악! 동호회는 더 싫다.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도 싫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갈등, 불화 같은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말들이,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되어 누구 하나 탓할 수는 없지만 불만은 남는 그 상황이, 싫다. 좋은 사람을 그때그때, 기쁜 날이니까 우울한 날이니까 비가 오니까 눈이 오니까 어제 꿈에 나와서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나는 게 좋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앞에 앉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20년 지기 젤리 양(징그럽지만 본인이 이렇게 불러달라고 하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도 소개팅 싫지? 너도 동호회 체질 아니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물었다.

“너 마지막 연애가 언제였냐?”

“몰라, 한 10년 정도 된 거 같은데?”

“푸하하하하하. 야, 아주 몸에서 사리가 쏟아지겠다.”

“너는?”

“나? 나는……, 한 7년?”

“야, 장난하냐?”

“어, 미안.”

친구야, 소개팅이 싫다느니, 동호회가 안 맞는다느니 할 때가 아니었구나. 우리 올해는 손잡고 소개팅, 아니 선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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