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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Sep 02. 2016

엄마의 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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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은 생생히 기억한다. 돌계단을 서너 개 올라가면 커다란 철제 현관문이 나타난다. 철컹, 그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선다. 바로 눈앞에 붉은 꽃을 따서 입에 물면 달콤한 맛이 나는 사루비아가 잔뜩 심어져 있다. 사루비아가 심어진 정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인 할머니 댁이, 오른쪽으로는 단칸방들이 뒤집어진 ‘ㄴ’자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뒤집어진 ‘ㄴ’자의 위쪽 끝에는 살구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살구나무 앞으로 스무 개쯤 되는 돌계단이 놓여 있다. 하나, 둘, 셋, 넷… 돌계단을 오르면 꽤 넓은 마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도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딸린 집들이 마당을 ‘ㄱ’자 모양으로 감싼 채 늘어서 있다. 나는 한 살부터 네 살까지 이 ‘ㄱ’자 중 한 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 우리의 적이 있었다.

나는 세 살, 오빠는 다섯 살이었고, 우리 집 건너 건너에는 우리와 나이가 같은 다섯 살, 세 살 자매가 살았다. 그중 다섯 살 언니가 끊임없이 우리 오빠를 괴롭혔다. 당시 나는 팬티만 입고 분수머리를 한 채 넓은 이마로 바람을 가르며 마당을 뛰어다니던 천둥벌거숭이였기에 그 괴롭힘의 실상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이랬다.

“어느 날, 나는 마당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오빠는 그 옆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었어. 아직 좀 추울 때였는데, 그 끝에 집에 사는 00이가 오빠한테 다가오는 거야. 그 전에도 오빠 노는 데 와서 장난감 뺏고, 흙 뿌리고, 상대 안 해주면 뒤통수 때리고 엄청 괴롭혔거든. 그래서 내가 빨래를 하면서 어떻게 하나 유심히 쳐다봤지.

오빠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또 오빠 노는 걸 방해하는 거야. 오빠가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상대를 안 해주니까 이번에는 웬일인지 그냥 가더라고. 오늘은 저 정도로 끝내려나 보다 하고 빨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빠가 ‘와앙~’ 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놀라서 쳐다보니까 글쎄 고 기집애가 바가지에 찬물을 떠와서는 앉아 있는 오빠 머리에 부어버린 거 있지? 아직 쌀쌀했는데. 오빠 감기 걸릴까 봐 얼른 데리고 집에 들어가는데, 내가 더 화가 났던 게 뭔지 알아? 그때 00이 엄마가 마당 한쪽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지 딸을 혼내기는커녕 이 모습을 보고 웃고 서 있는 거야. 그놈의 망할 여편네가.”

자식이 밖에 나가 사람들을 때리고 다녀도 문제지만 맞고 들어오는 꼴은 또 못 보는 게 부모 심정이라고들 한다. 엄마는 오빠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냈다. 바보처럼 왜 맞고만 있냐고, 다음부턴 너도 반격을 하라고. 뒤통수를 때리면 너도 뒤통수를 때리고, 배를 때리면 너도 배를 때리라고. 오빠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드디어 복수의 그날이 찾아왔다. 역시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쭈그려 앉은 채 뒤통수를 맞은 오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물리쳐야 할 적을 마주 본 후 깊이 숨을 내쉬었다. 매번 승리를 거머쥐었던 그 적은 ‘니가 뭘 어쩌겠다고?’라는 표정으로 오빠를 내려다보았다. 오빠는 고개를 돌려 마당 한 구석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오늘도 맞고 들어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기운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아마 오빠는 갈등했을 것이다. ‘적에게 맞는 게 나을까, 엄마에게 맞는 게 나을까.’ 그리고 선택했다. 주먹을 꼭 쥐고 팔을 들어올렸다. 팔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다가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적의 배에 꽂았다. “윽.” 적은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는 적과 자신의 주먹을 번갈아 쳐다보다 엄마에게로 눈을 돌렸다.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근데 왜 그 언니가 오빠 머리에 찬물 부었을 때 바로 언니를 혼내지 않았어요?”

“그래 봐라. 당장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지. 애들 싸움은 애들끼리 풀게 해야 하는 거야. 너네 키울 때는 자기 애라고 그렇게 막 싸고돌지도 않았어. 그리고 내가 그때 나서봤자 나중에 또 괴롭힐 걸 뭐.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줘야지.”

“그 방법이 같이 때리는 거였어요?”

“뭐, 다른 방법 있니? 그리고 너 때문에 엄마가 더 화를 못 낸 거야.”

“제가요? 제가 왜요?”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이랬다.

팬티만 입고 분수머리를 한 채 넓은 이마로 바람을 가르던 천둥벌거숭이도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가 우리 오빠를 괴롭히고 있고, 오빠를 괴롭히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인지력은 있었던 듯하다. 허리 위에 두 팔을 척하니 올리고 마당에 서서 “누가 우리 오빠 때렸어!”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팬티만 입고 분수머리를 한 채 넓은 이마로 바람을 가르던 천둥벌거숭이였지만 ‘자신보다 큰 적에게는 함부로 덤벼선 안 된다’는 인지력은 있었던 듯 오빠를 괴롭히던 언니 대신 그 동생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죄 꼬집어놓았던 것이다.

“하루는 00이 엄마가 걔 동생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찾아왔더라. 희주가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놨다고. 여자애 얼굴을 이렇게 해놔서 어떡할 거냐고. 오빠 일도 있고 해서 난 사과 안 했다.”

그 후로 적은 우리 오빠를 다시는 괴롭히지 않았다. 나도 적의 여동생을 꼬집지 않았고, 내가 네 살이 되던 해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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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나의 적이 살던 그 집을 떠나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에서 3년을 보내고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이제 옷도 제대로 갖춰 입고, 머리도 길게 길러 하나로 묶은 채 찰랑찰랑 앞머리를 휘날리며 유치원에 다녔다. 그리고 그곳 유치원에 모든 여자아이의 적이 있었다(정녕 적이 없는 곳에선 살 수 없단 말인가!). 곱슬머리를 한 그 남자아이는 치마 들추기, 고무줄 끊기, 별명 부르기 등 할 수 있는 장난이란 장난은 모두 다 치며 여자아이들을 울리는 게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컸던 나는 우는 여자아이들을 대신해 그 곱슬머리를 쫓아가 응징하는 역할을 맡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덩치로, 힘으로 나를 이기지 못했던 그 곱슬머리 녀석이 도망칠 거리를 확보한 채 “안주!”라고 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곱 살이었던 나는,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시는 아빠와 술을 잘 안 마시는 엄마 손에서 자란 나는 안주가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지만, 나를 안주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곱슬머리의 그 말투와 행동이 참을 수 없이 싫었다. 있는 힘껏 달려가 목덜미를 잡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아도, 등짝을 때려줘도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하고는 놓아주면 바로 뒤돌아 “이 안주야!”라고 놀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분한 나머지 눈물을 쏟고 말았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깜짝 놀라 물었다.

“뭐야, 왜 울어?”

“애들이 자꾸 안주라고 놀려요.”

“울지 마. 뭐 그런 일로 울어.”

“그렇게 부르는 거 너무 싫단 말이에요. 우허엉.”

잠시 나를 달래던 엄마는 내가 쉽게 달래질 것 같지 않자 우는 나를 골똘히 바라보다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한번 해봐….”    


다음 날 유치원에 갔다. 전날 나를 울린 뒤 의기양양해 있던 곱슬머리는 나를 보자마자 다시 “안주!”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좋아, 엄마가 알려준 방법을 사용해보자. 나는 도망치는 곱슬머리를 뒤쫓았다. 빠른 발(어릴 때는 빨랐습니다)과 어린이답지 않은 집요함을 발휘해 곱슬머리를 사로잡았다. 나는 곧바로 곱슬머리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뭘?”

곱슬머리는 약간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주라고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평소와 다른 나의 태도에 곱슬머리는 주눅이 들어 선뜻 안주라고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 질 수 없다는 듯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안주야!”

나는 단단히 그러쥔 주먹을 곱슬머리의 얼굴에 꽂았다. 그러곤 도망가지 못하게 더 단단히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곱슬머리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말했다.

“안주.”

또다시 주먹이 날아갔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아, 안…, 으아앙~!”

결국 곱슬머리가 울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그 싸움은 끝이 났다. 전날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누가 널 안주라고 부르면 걔 멱살을 딱 잡고 말해. ‘다시 한 번 말해봐.’ 그래서 또 안주라 부르면 때려. 이렇게 안주라고 부르지 않을 때까지 때리는 거야.”

그렇게 내 유치원 생활에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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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거의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비폭력 평화주의자가 되어(정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그 곱슬머리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정말입니다). 때려서 미안합니다. 그 언니의 동생에게도 말하고 싶다. 얼굴을 꼬집어 미안합니다.

얼마 전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왜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해봐’ 방법을 알려줬느냐고.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니가 진짜로 때릴 줄 몰랐지.”

이런 무책임한 답변을 들려준 엄마는 지금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이제는 눈이 따가워 책도 오래 못 보겠다며 자주 눈을 깜박거리고 이따금 눈을 감는다.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편집자를 하게 된 것도 엄마의 영향인 듯하다. 팬티만 입고 분수머리를 한 채 넓은 이마로 바람을 가르던 천둥벌거숭이일 때도,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채 찰랑찰랑 앞머리를 휘날릴 때도,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보다 더 나이를 먹은 지금도 늘 책 읽는 엄마를 보아왔고, 보고 있다. “책을 읽어라”고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몸으로, 생활에서 항상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말'보다 '행동'의 힘을 믿는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함을, 누군가가 한 싫은 행동은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엄마에게 배웠던 것이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나 자신을 지키는 법,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법을 제대로 몸에 새겨주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준 이 유산을 감사히 지켜가야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해본다.


지금 엄마는 읽던 책을 덮고 눈을 감고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책 분야가 소설, 그것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스릴러라는 건…, 함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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