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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Apr 11. 2016

부끄러움은 나의 것


천장이 보인다. 숨에서 술 냄새가 난다. 뒷머리가 묵직하다. 아, 어제 내가 또 술을 퍼마셨구나, 깨달음과 동시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 하나둘 줄줄이 떠오른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발랄할 여주인공이 허공에 하이킥을 날리며 지난밤을 후회하지만 현실 속 그다지 발랄하지 않은 난 가만히 두 손을 들어 올려 머리카락을 붙잡고 지난밤을 후회한다.

신이 나서 큰 소리로 떠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맨 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아니 조금 더 정제해서 건넸을 말들을 하고, 하고, (아마) 또 하던 내 모습…. 어제의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가뜩이나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머리카락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가고 부끄러움에 돌돌 말린 몸뚱이를 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고등학생 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 윤동주의 〈서시〉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아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코끝에 스치는 술 냄새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어쩌면 이 시를 좋아했던 건 운명이었을까? 아, 이럴 땐 〈맨인블랙〉에 나오는 그 기억 삭제 장치를 갖고 싶다. 어제 저랑 술 마셨던 분들 여기 보세요. 여길 보시고 부끄러운 저의 모습은 다 잊어주세요. 하나, 둘, 셋, 번쩍!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내 생존본능은 익숙한 냄새를 감지한다. 지금 부엌에 가면 몸에서 술기운을 거둬낼 국물을 얻어먹을 수 있다!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선다.

부엌에 들어가 엄마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팔팔 끓고 있는 저 국은 필시 콩나물을 넣은 김칫국이다. 생존본능이 시키는 대로 “역시 엄마밖에 없어”라고 말하며 애교를 부려보지만 엄마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평생 남편 해장국 끓일 일 없다고 좋아했더니 딸내미 해장국을 끓여다 바칠 줄 누가 알았어. 술 좀 적당히 마셔.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뭐 그렇게 마셔.” 잔소리 공격이 시작된다. 네, 네, 저도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는 중입니다.


콩나물김칫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후루룩 먹고 있자니 아직도 술에 절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몽롱한 뇌가 저 먼 옛날 초등학교 6학년 언제쯤 있었던 일을 소환한다.

그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다. 아침조회를 마친 담임선생님이 오전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한 번도 하지 않으면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쓰레기 줍는 벌을 준다고 하셨다. 그래, 아마 나는 꽤 당황했을 것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발표하기 정말 싫은데.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소리 내 무언가를 말한다는 건, 모든 사람이 나를 주목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배배 꼬이는 일인데. 1교시가 지나고, 2교시가 지나고, 3교시가 지나갔다. 다른 아이들은 손을 번쩍번쩍 들고 두 번 세 번 잘도 발표를 하는데 나는 손을 들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어쩌다 그래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다 싶어 손을 들어도 더 적극적인 아이가 지명되었다. 어쩌면 내 손이 선생님께 신호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 제가 손은 들었지만 절대 저를 시키지 마세요. 손은 들었지만 발표는 하고 싶지 않아요, 뭐 그런.

이 발표 제도가 얼마나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몇 번 발표에 성공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며 쓰레기를 줍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왠지 억울하고, 창피했던 기분과 함께.

그래, 나는 그런 아이였어. 발표도 싫어하고, 토론도 싫어하는 아이. 궁금한 것도 별로 없고, 혹시 잘못 말하면 어쩌나 그래서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내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한 아이. 얌전히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외우는 주입식 교육이 딱 적성에 맞는 그런 아이. 그래,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지금 이렇게 부끄러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거지.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 친구이자 내게 글 쓰고, 책 읽고, 일할 공간을 내어준 황씨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 친구는 대학 때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주문도 못했어요.”

그래, 그땐 그랬지. 주문하다 실수할까봐, 잘못 말할까봐, 바보처럼 보일까봐, 내 목소리를 점원 외의 사람들이 듣는다는 게 부끄러워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늘 심호흡을 하고 가슴부터 쓸어내려야 했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야, 그런 건 좀 잊어주면 안 되겠니? 그런 의미에서 여기를 보렴. 하나, 둘, 셋, 번쩍!


콩나물김칫국을 먹고는 다시 비척비척 내 방으로 향한다. 뒤통수에 따끔한 무언가가 내리꽂히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스피드다.

이불을 끌어안고 몸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한다.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확인한다.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은 텅 빈 화면이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감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16년간의 음주 경험상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건 어제 크게 실수될 만한 일도, 크게 부끄러울 만한 일도 없었다는 뜻이다. 갑자기 허무함이 몰려든다. 오늘 아침 나는 왜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부림쳤던 것일까?

뭐가 그렇게 부끄럽느냐,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느냐 묻는다면 사실 “나도 잘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도 정말 모르니까. 낯선 환경에 놓였을 때,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지금 내가 부끄러워할 만한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그 감정은 이미 나를 지배하고 있다. 마음속에는 당당하고 멋지고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 그려져 있는데 현실에는 마치 언니 옷을 빌려 입은 사람처럼 어색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나도 취했지만 그대들도 취했었어요. 우리 서로 술기운 빌려 즐겁게 놀았으니 그걸로 퉁 칩시다. 마음이 맞았다면 다음에 만나서 또 즐겁게 놀 수 있을 것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털어버리면 될 것을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몇 시간을 끙끙거리고만 있다.

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다시 자책 모드로 돌아갈 무렵 문득 번쩍, 하고 섬광처럼 하나의 깨달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지금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이 부끄러움 때문이 아닐까? 이런 나의 부끄러움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것 아닐까?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원하는 바, 생각하는 바를 소리 내 말할 때’마다 톡톡 터져 오르곤 하던 부끄러움이 정말 고역인 회의를, 부하직원의 도리로서 상사와 저자들에게 해야 할 자잘한 수발을 거부하게 만들고,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줄줄이 찾아오던 부끄러움이 취한 나를 품어줄 마음 편한 사람들을 찾게 만들고, ‘낯선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똑똑똑 문을 두드리던 부끄러움이 익숙한 사람과 더 자주 만나도록 나를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생겨난 ‘걸림’들이,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생김’이 결국 나를 홀로, 조금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의 자리로 데려다놓았다.

그래, 지금 나의 이 생활은 부끄러움 위에 지어진 것이구나. 성격이 인생을 어떻게 어디로 이끄는지 그 연관성을 확인한 기분이었다(이런 통찰력을 발휘하는 걸 보니 술 마시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엄마의 잔소리가 또 시작되겠지? 흠흠).


그로부터 며칠 뒤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외식을 자주 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밥하기 싫어!”라는 엄마의 뜻을 받들어 요즘 종종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날의 메뉴는 해물칼국수. 맛집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간 곳이었지만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꽤 커다란 홀에는 손님 몇이 듬성듬성 앉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곧 메뉴를 정했다. 얼큰 해물칼국수와 해물파전. 자, 이제 주문을 하자. 나는 더 이상 부모님께 보호받아야 할 어린애가 아니다, 나는 이제 부모님을 보호해야 할 입장에 있는 어른이다, 그러니 주문은 내가 해야 한다, 마음먹고 몰래 심호흡을 한다. 목표는 저기 부엌과 식탁 사이를 요리조리 오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다. 아주머니가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순간을, 이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오는 순간을,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을 노려야 한다. 내 목소리를 못 들으면 안 되니까, 여러 번 부르면 더 부끄러우니까 단번에 끝내야 한다. “여기요!” 목청껏 불러야 한다. 그런데 이 집은 왜 이렇게 홀이 넓은 거야. 다른 데보다 더 크게 불러야 하잖아.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문득 내 앞에 희미한 미소를 띠운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아빠가 보인다.

아, 그래,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할 때면 늘 주문은 엄마의 몫이었다. 반찬을 더 달라고 하는 것도, 계산을 하는 것도 늘 엄마였다. 아빠는 약간 수줍은 듯 조용히 앉아 주문된 음식이 나오기를, 빈 반찬 그릇이 다시 채워지기를 얌전히 기다릴 뿐이었다. 아, 나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부끄러움을 타는 저 성격까지 아빠를 닮은 거였구나, 내 앞에 앉아 있는 저분은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묘하게 웃음이 났다. 닮다 닮다 이런 것도 닮는구나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여기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 내가 주문하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쳤네. 그래, 어쩌면 나는 또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제가 주문을 하긴 할 건데 딱히 주문하고 싶진 않아요, 될 수 있으면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뭐 그런. 그래, 나를 프리랜서로 이끈 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건 어쩌면 유전자의 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후루룩후루룩, 칼국수를 먹는데 어딘가에서 윤동주의 〈서시〉가 들려온다. 그래, 유전자가 주었든, 내가 스스로 만들어왔든 이렇게 생긴 대로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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