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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Nov 01. 2018

그날의 일

하늘에선 꾸준히 조심스럽게 비가 내렸다.

삶의 경계를 넘어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형태와 질감을 가진 어떤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 옆에 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 조성민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몇 년 전 가을 어느 날, 나는 한 선배에게 그날의 일을 털어놓고 있었다.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스팔트 위를 미친 듯이 달렸다.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아니, 어쩌면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지 마는지, 우산을 쓸지 말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걸어서 5분이면 닿는 119구조대를 향해 그렇게 달렸다. 문을 쾅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던 것 같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평소 소리라곤 질러본 적 없는 내가 누군가를 향해 그처럼 간절히, 큰 목소리를 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구급대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빨리 가야 해요. 빨리, 빨리요.”


구급대원 두 명과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그때 나는 꽤 흥분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오빠의 상태를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마치 남의 것만 같았다. 수신 상태가 불량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은 듯 지직거리고, 끊어지고, 거칠었다.


“저희 집 여기서 5분밖에 안 걸려요. 가까워요. 집에 왔는데 쓰러져 있었어요. 심장은 안 뛰고, 목에 손을 대봤는데 맥박은 뛰고 있었어요. 느리지만. 여기서 우회전이요. 바로 좌회전해서 쭉 가시면 돼요. 아빠가 인공호흡을 했는데…. 저기요,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빨리요.”


구급차에서 막 내리는데 동네 식당에서 일하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엄마와 마주쳤다. 구급대원은 들것을 들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이어 오빠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병원에 도착하면 상황 봐서 전화할게. 너는 집에 있어.” 부모님은 구급차를 타고 떠났다.


시끄럽던 주변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무섭도록 깊고 진하고 무거운 고요함이었다. 오빠가 쓰러진 방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갑자기 몸에 한기가 들면서 두려움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손과 턱과 어깨가 덜덜 떨릴 정도의 한기와 두려움이었다. 삶의 경계를 넘어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형태와 질감을 가진 어떤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 옆에 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빠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오빠는 머리끝까지 하얀 천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다. 엄마는 오빠의 몸 위에 엎드려 울었고, 아빠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혼자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두 주먹을 꽉 쥐고, 오빠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했다. 소리라도 질러보지.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빠가 들을 수 있도록.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슬픔과 안타까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오빠가 그렇게 쓰러져 서서히 굳어가는 동안 아빠는 도대체 뭘 한 거지? 같은 지붕 아래 있었으면서 어떻게 그걸 몰랐지? 너무나 화가 나고, 오빠가 살지 못한 게 모두 아빠 탓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커져가는 분노가 점점 슬픔을 압도해갔다.


3일간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친척들, 오빠 친구들, 내 친구들이 조용히 왔다 갔다. 하늘에선 꾸준히 조심스럽게 비가 내렸다.


나는 언제 그 말을 듣게 됐을까? 친구 부모님의 차를 얻어 타고 경찰서에 가 오빠 이름 옆에 ‘변사체’라고 쓰인 서류에 사인을 하고 돌아온 뒤였을까? 아니면 밤새 울다 장례식장 안에 있던 동굴 같은 방으로 기어들어 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온 뒤였을까?


그 손님은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희주는 뭐 했어?” 내 이름이 들려서 그쪽을 돌아봤던가? “아휴, 그날 희주만 집에 있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쉬움을 가득 매단 그 말이 내 귀에 와 박혔다. 순간 그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 속에 담긴 또렷한 원망이 내 눈에 와 박혔다. 그녀의 감정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져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확 들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누군가를 원망한다는 사실을. 그 원망은 자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 혹은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 혹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내가 나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아빠를 원망했듯이, 저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나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 죽음은 아빠의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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