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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Nov 08. 2018

나를 용서하는 법

어쩌면 평생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낸 상처로 얼룩져 있다.


ⓒ 조성민


“너는 아직도 너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구나.”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선배가 말했다.


“너도 알고 있잖아.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선배는 손을 뻗어 내 등을 쓰다듬었다. 


“아버님은 얼마나 당황하셨겠니. 처음 겪는 일 앞에선 누구라도 당황하잖아. 아무리 어른이라도. 아버님은 스스로 얼마나 자책하셨겠니. 같은 집에 있으면서 자식을 구해내지 못했다고.”


“저도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아빠의 잘못도 아니고, 제 잘못도 아니라는 걸. 그래서 아빠한테는 언젠가 꼭 미안하다고 말할 거예요. 하지만 제 가슴속에는 그 말이 내내 박혀 있어요. 아, 내가 그날 집에만 있었어도, 오빠가 쓰러졌을 때 바로 119에 연락해서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적어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진 않았을 텐데…. 나 때문에 오빠가 죽은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이제 그만 너를 용서해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나를 용서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를 용서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실로 오랜만에 누군가의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그렇게 울었다.


나, 아빠한테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때 오빠가 그렇게 됐을 때, 난 사실 아빠를 원망했어요. 집에 같이 있었는데 오빠의 상태를 몰랐다는 이유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원망의 대상이 돼본 뒤에야 알았어요. 원망은 내가 받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방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무기라는 걸. 나에겐 방패지만 상대에겐 창으로 느껴지는 그런 무기라는 걸. 그때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하려고도 하지 않아서, 내 슬픔이 너무 커서 아빠의 슬픔은 상상조차 하려 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요.


아빠한테 사과해야지, 마음은 먹었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근 1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제법 술을 마신 어느 날, 지하철역으로 딸내미를 마중 나온 부모님께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밤공기는 산책하기 딱 좋을 만큼 시원했고, 시간이 시간인지라 아파트 앞 산책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셋이 나란히 서서 단풍이 지기 시작한 나무 사이를 걸었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나, 아빠한테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아빠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아빠가 조용히 울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길을 걸으며 셋이 조용히 울었다.


내 경우에 한해 생각해보면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의 마음속은 주변 사람이 낸 상처보다 자기 자신이 낸 상처로 얼룩져 있다. 어쩌면 나는 오빠의 죽음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원망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혼자 창으로 찌르랴, 방패로 막으랴 바빴는지도.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나를 용서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평생, 자신을 탓하며, 그렇게 아파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금씩 덮어둔 상처를 살짝살짝 들춰 여기가 아픈 데예요 서로 알려주고, 그곳에 약을 바르는 과정을 밟아나가다 보면, 같은 상처를 가진 동지로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나가다 보면 ‘용서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이기적인 인간으로 비칠 것이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빠의 상처를 들쑤셨다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억지로 내 마음만 앞세웠다고. 혼자 미워했다, 사과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꼴이 우습다고.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서툴고 모자란 내가 ‘나를 용서하는 법’을 찾고자 어렵게 내딛은 발걸음이었다고, 그렇게 이해해주시길…. 그 서툴고 모자람이 거듭 누군가에게 상처가 됐다면, 다시, 사과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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