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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Sep 04. 2023

가을은 어디쯤 왔을까?



퇴근길 버스에서 멍하니 우리 동네 풍경과 하늘을 바라봤다.

벌겋게 익은 태양이 산 아래로 숨어들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반가운 새를 발견했다.

철새 두 마리가 하늘을 휘휘 날아가고 있었다.

바로 든 생각은 “가을이 오긴 오나 보다. 철새가 움직이기 시작하네”

하고 버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철새를 보았다고 가을이 오나 봐

했더니 엄마는 “그러게 말이야, 벼를 보니까 이제 누레지기 시작했더라”

그렇게 가을이 오고 있는 거에 우리는 반가워했다.


회사 근처는 낡은 건물과 찌그러진 차가 가득한

카센터가 대부분이다

찌그러진 차를 보고 있으면 꼭 회사에 있는 내 표정 같다.

엘리베이터는 늘 잘 오지 않아서, 층이 내려오는 숫자만을

목 빠지게 바라보고, 타자마자 누가 탈 새라 닫힘 버튼을

연신 누를 정도로 서울에서는 마음에 틈이 없다.

특히 이번 여름은 지독히도 무더웠고, 힘이 들었다.

김포의 가을이 그리웠다.


그러다 그토록 기다린 가을이 왔으니, 마음이 조금은 설렜다.

가을이 얼마큼 왔나 나는 확인하러 허산을 이번 주말에 향했다.

여름에는 허산을 가지 못한다

더위는 어찌어찌하겠지만 벌레가 싫은 

나는 몸을 긴장한 채 등산하기가 싫어서

안 가게 된다. 근 3개월 만에 허산을 찾았다.

올라가면서 허둥지둥 계속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봤다.

밤나무에 밤송이가 얼마나 익었는지가 궁금했다.


작년에는 뒤늦게 허산을 찾아서 밤송이가 다 떨어지고 난 후라서

어찌나 아쉽던지, 1년을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먼저 밤송이를

확인하려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이제 막 익기 시작했고 아주 작은 밤송이들만 흙길에

조금 떨어져 있는 거를 보고 안심했다.

밤은 따로 줍지는 않지만, 발로 밤송이를 비벼 토실토실한

밤송이를 발견하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올해는 일찍이 확인했다.


그리곤 엄마를 만나러 시골 논밭길을 차를 타고 지나가며

논을 확인했다. 벼들이 조금씩 노래지고 있구나

그 너머에 핑크뮬리밭도 얼마큼 자랐는지를 확인하며

주말 내내 가을이 어디쯤 왔는지 마중 길을 나서듯이

동네 곳곳을 지나다니며 확인했다.

날짜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선선한 바람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밤나무를 올려다보고, 철새를 확인하며, 벼가 익어가는 것을 보며

가을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동네에 사는 게 좋았다.


올해 여름처럼 내 마음도 뻘겋게 열이 나고 지쳐있었다.

선선한 가을의 발걸음이 이번 주말에 내 마음을 살짝 열을 내려줬다.


더 무르익은 가을이 오면

내 마음의 틈도 열어지고 더 선선해지겠지.


나의 열매를 열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잘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퇴고가얼마남지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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