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다섯째날, 세상에 하나뿐인 나

사별 경험자를 위한 미술 치료

by 평생사춘기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로마 오일 가습기를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차분하게 시작하는 하루가 좋다.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 전철을 타고 또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새로운 장소에서 만났다.

얼음과 커피 머신은 없었지만,

조금 더 조용한 공간이라 마음에 들었다.

가볍게 안부를 묻고

지난주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빠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누구에게도 엄마의 모습을 찾으려 하지 않으니

각자의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고

오늘은 나에 대해 표현해보기로 했다.


눈을 감고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했다.

단단한 작은 돌,

그 주변을 감싸는 연약한 솜뭉치가 떠올랐다.

겁도 많고 상처도 잘 받는 나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눈을 뜨고 재료를 살펴보았다.

작은 조약돌이 있어 종이로 감싸

조금 큰 돌덩이로 만들었다.

솜뭉치가 보이지 않아,

실뭉치를 풀어

돌덩이를 가운데 두고 감기 시작했다.

실뭉치를 감을수록

더 단단해져 갔다.

어...

원래 의도와 다르게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따라가기로 했다.


하얀 점토를 깔고 그 위에 뾰족한 소라를 꽂으면서,

내가 지나온 힘든 사건들을 하나씩 생각했다.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고

유학을 준비하며 은행에서 알바를 하고

낯선 미국 생활, 공부, 차별, 학비, 생활비

취업, 회사, 이별, 배신, 아픔,

엄마의 죽음, 퇴사

그 길을 걸으며 피를 흘리며

점점 단단해져 지금의 내가 된 거구나.

그 과정에서 뾰족한 소라가 박히는 건 당연한 거였다.


언제나 싫은 내 모습을 보고

반성하고 바꾸고 싶어 했다.

나의 뾰족함을 남에게 보인 날이면

날 것의 내 모습을 들킨 듯 부끄럽고 내가 싫었다.

그런데

그림으로 표현해놓은 내 모습을 보니

그 뾰족함 들은 그 시간들에 대한 훈장 같았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 세상에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은 나 밖에 없구나.

기특하고 소중하구나.

부분의 나로써가 아닌,

전체의 나를 바라본 적이 처음이었다.


이제 조금 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단단한 오뚝이 같은 나

선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나

세월을 지나오며

내 본질을 잘 지켜낸 나

참 엄마를 닮고 싶었는데

내 안에 엄마의 모습이 있구나.

이런 사람으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끼고 사랑하며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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