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넷째날, 바라보다

사별 경험자를 위한 미술 치료

by 평생사춘기

전철역에서 걸어가는 길이

무척이나 더웠다.

도착하자마자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만들어주셨다.


간단하게 날씨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지난 3번의 만남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셨다.

깊은 슬픔,

나에게 엄마란 존재,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혼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아빠 이야기가 나왔다.

왜인지 모르게 시작부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빠의 존재

그림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주변에 큰 재료가 보이지 않아,

작은 돌을 얇은 종이로 싸서 철실로 감았다.

그리고 똑같이 조금 작은 걸 만들었다.

하얀 스티로폼 위에 두 개를

멀리 거리를 두고 붙였다.

그리고 중간에,

갈색 찰흙을 놓고 초록 풀 모양을 붙였다.

그 주위를 하얀 스펀지로 감싸주었다.


잠시 눈을 감고 아빠를 떠올리니

큰 바위가 떠올랐다.

저 멀리 무채색의 큰 바위

무뚝뚝한 큰 존재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아빠는 가장이고 어려운 존재였다.

대화도 많지 않았고,

응석을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있기에 우리 가족은

초록의 조화를 가질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 엄마에게 전해 듣는 정도

그래도 충분히 화목했다.


엄마가 사라진 후

두 바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삭막한 두 바위가

멀리 거리를 유지하며

아무 교류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가족'이란 의미가

달라졌다.

마음을 기댈 수도

의지할 수도 없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엄마를 잃은 아빠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배우자의 죽음

가장 힘든 사람이 아빠일 거라고 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런데 가끔은 부모로서 옆에서

힘들어하는 자식을 돌아보지 못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나도 여기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를 생각할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흘렀다.


그림에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동그란 하얀 스펀지를 꺼내

검은색 물감을 작게 올렸다.

그리고

두 바위에 눈을 달아주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바위

갑자기 삭막한 그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작은 바위가 큰 바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래도 계셔주셔서 다행이에요."

큰 바위가 작은 바위에게 말했다.

"잘 살아주었음 한다."


내가 엄마 같은 사람이 될 수가 없고,

아빠가 엄마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없다.

내가 바라는 건,

그냥 지금 이대로

그 자리에서

서로의 존재가 있음을 알고

서로를 바라봐주는 것

그거면 된다.


아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도

누군가와 대화해 본 적도

없었다.

가슴 한 구석에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지만

들여다볼 수도

꺼내볼 수도

없었던 이야기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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