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마침내 물리치료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이름 석 자 ‘물리치료사’는 나에게 단지 직업 이상의 의미였다.
삶의 목표였고, 존재의 이유였고, 가난과 설움을 이겨낸 나 자신의 증표였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쓰러진 몸을 일으켜야 하는 환자들에게, 나의 손길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었다. 처음엔 미숙했지만, 환자들과의 교감 속에서 나는 점차 성숙해졌다.
그 무렵 나는 교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딸마저도 나와 같은 길, 물리치료사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일터를 지키는 삶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나는 언제나 환자 앞에서 당당했고, 한 명의 치료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때론 눈물겹도록 헌신했다.
내 삶은 늘 팍팍했고, 매 순간이 투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누구보다 간절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지금의 나는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다. 이제서야 꼭꼭 싸매어놓고 30년을 차마 볼수없었던 부모님의 사진을 꺼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은 사진 속 그리운 얼굴들을 보면 눈물이 터져버릴까봐, 무너져버릴까봐 감히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움마저 껴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삶의 아픔마저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나는 말하고 싶다. 설움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당당히 살아온 나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낸 나 자신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다고.
나는 지금도 치료실에서 굳은 관절을 천천히 열고 경직된 근육을 부드럽게 풀며 환자 한사람의 일상으로 귀환을 돕는다.
30년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고령화 정책에 관한 제안도 꾸준히 보내고 있다.작은 목소리라도 누군가의 내일을 바꿀수 있으니까,
불같이 달려온 삶을 지나도 나는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수있다.
그 마음의 근원에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다 .
마지막 프롤로그 기적 처럼 다시만난 인연 에서 그시작을 들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