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첫직장과 병원생활

by 네로

7장. 그리고 나의 첫 직장, 병원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물리치료실 보조였지만 환자들과 오목을 하며 즐겁게 일했고, 환자들은 나와 10원짜리 오목 내기를 즐거워하셨다. 일도 성실히 잘하였고, 출산을 무사히 마친 물리치료사님이 돌아오신 후에도 나는 병원장님과 사모님께 신임을 얻어 병원에서 비용을 대주고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녔다.


학원은 기차를 타야 갈 수 있었고, 나는 병원에 근무하면서 바로 기숙사로 들어왔기에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 기차로 학원에 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일했다. 나는 간호조무사 시험에 당연히 합격했고, 그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되었다.


조무사 언니들은 대부분 좋았지만, 늘 그렇듯 '태움'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하루는 손가락이 찢어진 환자 손 꿰매는 준비를 갑자기 하라고 하였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는 우물쭈물했고, 그 모습을 본 조무사 언니는 “아직도 슈처 준비도 못하고 뭐 했니?”라고 꾸중하였다. 나는 그날 밤 모든 슈처 도구들을 모두 외워버렸다. 니들홀더, 모스키토, 시이저, 매스, 나일론, 니들 등.


다음 날, 조무사 언니가 원장님도 계신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다시 슈처 준비를 시켰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척척 바트에 준비해 놓았다. 원장님은 며칠 일도 안 해본 조무사일을 척척 해내는 나를 내심 대견해하셨고, 조무사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모든 수술에 스크럽을 쓰고 수술 어시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디스크 수술, 대퇴부 골절 수술, 견갑골 골절 수술, 팔 골절 수술, 피부 이식, 골 이식 수술까지 정말 모든 수술을 경험하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수술은 피부 이식 수술이었는데, 그건 가만히 피부를 붙이면 나는 실을 자르는 것만 2시간을 해야 했고 단순하면서도 다리가 아팠다. 대퇴부 골절에 큰 핀을 박을 때는 오후 7시에 시작한 수술이 밤 11시가 되어야 끝이 났다.


수술이 끝나면 사모님이 간식비를 주셨고, 우리는 그 돈으로 통닭을 사다가 먹으며 힘듦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주말이면 젊은 당직 의사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분은 주말에 번 당직비를 고스란히 우리에게 쓰고 가셨다. 주말 밤이면 병원 앞 철길에 앉아 술을 마셨고 이야기꽃이 피며 많이 즐거웠다.


회상하면 분명 일이 고되었음에도 즐거웠고, 좋았던 것 같다. 다음 해, 병원장님과 사모님이 나를 대학에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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