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를 옮기자마자 재택근무의 꿈을 꾸고 있는 철없는 후배 B와는 달리 우리들의 아버지들과 같은 부서장 A부장님의 삶은 녹녹치 않다. 이번의 큰 조직개편이 B에게도 충격이어서 며칠의 불면을 갖다 주었지만, A부장님에게는 갑자기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나는 정도의 강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언제 한번 뜨거워 보지 않았던 연탄이 있었던가. 회사 앞에 원룸을 얻어서 밤낮주말없이 회사일에 매진했던 때, 회사를 이끌어 가는 부서의 리더로서 촉망받았던 때, 회사의 돌아가는 사정을 모두 속속들이 알았던 때, 차세대 임원 후보로서 교육 받았던 때, 아래에 3~40명을 이끌며 호령했던 때.. 전설처럼 남아있는 그 시절을 뒤로 하고 사원급 인력 3명, 과장급 인력 1명을 데리고 작은 배를 유유히 띄우고 계신다. 그동안 쌓아놓은 내공이 보통이던가.왠만한 비바람이 쳐도 다 막아낼 수 노하우 아이템과 연륜 아이템이 있다보니 그 위 부서장들은 A부장님이 하는 일에 존중의 의미를 담아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는다.
아래 친구들도 백만번 엑셀을 돌리고 돌려서 가지고 간 결과 숫자만 보고 오류와 문제점을 딱딱 짚어내는 숫자 신공 A 부장님께 덤벼들 수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개인 생활 터치도, 강한 푸시도 없는 내향형이며 평화주의자이신 A 부장님이신터라 아버지 보듯 경외심과 거리감을 갖고 대하고 있다.
막아놓은 저수지에 배 띄운것 같던 이 고요한 상태가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극적 액션 무비가 된 것은 조직개편과 함께 찾아 온 송두리째 바뀐 조직과 조직의 존재 의미와 리더들이었다.
새로운 조직에는 새로운 존재 의미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누구보다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누구보다 리드타임을 줄이고, 누구보다 세밀히 관리해야 살아남는 스텝의 생리상 지금보다 발전된 목표를 도출해 내야 한다. 지금까지 A부장님이 완벽하게 구획해 놓은 신도시를 새로운 팀장은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 신도시는 더이상 신도시가 아니네요. 더 최신식의 높은 빌딩을 세워보세요. 라고 계속 챌린지를 한다. 항상 자리에 앉아 계시던 A 부장님은 팀장님 자리를 드나드느라 자리 앉아 계실 시간이 없다. 다 늦은 시간에야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는다.
팀장님과의 중식간담회 시간이다. 팀장님과 함께 앞으로 걷고 있지만, 신기하게 팀장님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앞으로 걸으면서도 뒤로 걷는 것 같은 신공을 발휘하고 계신다. 중간에 있는 후배 B는 어느 속도로 가야할지 중간에서 애매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한다. 커피를 한잔 할 때도 신기하게도 팀장님과 제일 먼 자리를 잘 찾으셔서 몸을 밖으로 돌린 제일 먼 자세를 취하신다. 이렇게 회의실이 넓었던가. 공간감의 확장이다.
폭풍은 지나갈까? 잦아들을까? 다시 저수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쎈 물살에 좌초되지 않을까? 배 버리고 도망가야 하나? 크루즈 여행에서 래프팅이 되어 버린 상황에 A부장님은, 우리는 무사히 육지에 닿을 수 있을까?